[데스크 칼럼] 아이들이 사라지는 나라

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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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연 정치·사회 파트장

스쿨존 사고 건수 민식이법 이전보다 늘어
'우울갤' 활동 10대 성·그루밍 범죄에 노출
아이들 죽음 대부분은 사회적 타살에 해당
안전망 구멍 살펴야 저출생 문제도 해결

아이들은 대개 사회적 타살로 죽어간다. 인색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이 몽땅 사라지는 섬뜩한 재앙을 다룬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는 요즘에도 반복된다. 어른이 방치한 사회 안전망의 구멍이 아이를 집어삼킨 뉴스가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온다.

지난달 말 부산 영도구 한 스쿨존에서 등교하던 3학년 황예서 양이 1.7t 화물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주정차가 금지된 지역에서 차량을 세워 놓고 화물을 옮기다가 화물이 내리막길로 굴러 떨어지면서 화를 당한 것이었다. 불법 주정차 금지, 버팀목 미설치 등 어른들의 규정 위반 사항이 경찰 조사에서 드러나고 있다. 종잇장처럼 쓰러진 안전 펜스는 아이들을 보호하기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무책임한 어른 탓에 생일을 앞둔 황 양은 피지 못하고 저버린 꽃이 됐다.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스쿨존 사고는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제대로 지켜주고 있는지 반문하게 만든다. 지난달 초에는 대전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9세 배승아 양이 세상을 떠났다. 배 양은 면허취소 기준이 넘는 혈중알코올 농도 0.108% 상태서 차를 몬 운전자에 의해 희생됐다.

이른바 민식이법이 제정된 2020년 후 스쿨존은 어린이 안전을 위해 어른들이 안전을 약속한 곳이다. 하지만 스쿨존 내 교통 사고는 여전하다. 지난해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 건수는 514건으로, 민식이법이 시행되기 전인 2018년 435건보다 크게 늘었다.

스쿨존 밖의 아이들은 안전할까? 소아청소년과 의료 시스템의 붕괴는 아이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의 또 다른 구멍이다.

201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한해 평균 132곳의 소아과 의원이 문을 닫았다. 부산 지역의 대학병원에는 올해 전공의 모집에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해운대백병원은 5년째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없고, 고신대복음병원도 내년부터 전공의가 한 명도 없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소아과와 대학병원 소아과 전공의가 사라진다는 것은 응급 처치를 받지 못해 생명을 잃을 아이들이 늘어난다는 이야기와 같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오래 전부터 중증 환자를 중심으로 의료수가 개선 등을 요구해 왔지만 정부는 여전히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가정과 학교라는 보호망에서 오히려 상처를 받은 아이들도 늘고 있다. 고통을 나눌 사람을 찾지 못한 아이들은 자살을 선택한다. 우리나라 10대 사망 원인 1위는 질병이나 사고가 아닌 자살이다. 2021년 인구 10만 명당 10대 자살률은 2.7명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12~14세 자살률은 2016년 1.3명에서 2021년에는 5.0명으로 가장 가파르게 증가했다. 15~17세 자살률은 2018년 7.5명에서 2021년에는 9.5명까지 증가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평가 한다. 2020년 유니셰프 조사에서 우리나라 만 15세의 삶의 만족도는 67%로, OECD 국가 중 하위권에 속한다. 상위권의 네덜란드, 핀란드, 멕시코 아이들이 84%의 만족도를 보인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최근에는 우울한 아이들을 노린 범죄도 사회 문제로 대두 되고 있다. ‘우울 갤러리’(한 웹사이트 우울증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10대 여성 청소년이 성범죄나 마약, 그루밍 범죄의 표적이 된 것이다. 지난 달 16일 ‘우울갤’에서 활동하던 한 여고생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 과정을 소셜 미디어로 생중계 해서 충격을 줬다. 이 사건 이후 ‘우울갤’에서 활동하는 10대 소녀를 노리는 남성들이 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실제 경찰 수사로 일부가 입건됐다. 어린이날에도 ‘우울갤’에서 만난 15·17세 소녀가 한강에서 자살을 시도하다 구조되기도 했다.

아이들이 안전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면 아이를 낳을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출생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부모들이 출산이라는 커다란 모험을 감행해도 종족 보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기 힘든 속도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출생지원금과 같은 단편적인 대책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일이다. 정부가 2006년 저출생 예산을 편성한 이후 2021년까지 380조 2000억 원이 관련 사업비로 투입됐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출생율은 더욱 떨어지고 있다. 더 낳으라는 정책이 통하지 않는다면 이미 낳은 아이들이라도 잘 지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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