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220) 미물의 존재감과 지난한 노동 행위의 가치, 송수련 ‘내적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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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련(1945~)은 서울 출생으로 1965년 서라벌대학교(현 중앙대)에 진학하여 동양화를 전공했다. 변관식, 권영우, 안상철과 같이 당대 한국 미술의 변화 흐름을 주도하고 있었던 작가들에게 사사하였다. 이들의 가르침 아래 미술 재료와 기법의 연구, 추상성의 도입, 한지 작업의 확장, 오브제 사용을 통한 ‘한국화에 대한 방법론’을 고민했다. 송 작가는 이를 계기로 전통 재료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고, 일상생활 자체를 예술에 도입하게 됐다.

특히 송 작가는 재학 시절 안상철의 제자를 중심으로 ‘재료의 개방’을 주장하며 결성된 그룹전 ‘현대차원전’(1976)에 참여하면서 한국화의 주요 담지체인 한지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이후 한지의 원재료인 ‘닥’과 같이 자연에서 유래한 오브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송수련은 50여 년에 걸쳐 자연에 대한 심상을 화폭에 담아온 작가로서, 작업의 주요 소재로 자연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동양화의 산수보다는 수련, 연잎, 나뭇잎, 갈대와 같은 자연물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송 작가의 특징이다. 이는 자연물의 외형적 가치보다는 생사, 윤회, 섭리와 같이 자연 현상에 내재한 초월적인 가치를 표현하고자 했던 작가의 작업관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50여 년에 이르는 화업 전반에 걸쳐 작가가 명시해 온 주제인 ‘본질을 응시하려는 영혼의 시선, 관조(觀照)’적 태도를 잘 보여준다.

1990년 중반부터 송수련은 구체적인 형상을 띄는 자연물 대신에 ‘점’이라는 새로운 조형 언어를 선택하게 된다. 1993년에 호암미술관 ‘분청사기명품전’에서 장인의 섬세한 손길과 인고의 시간이 서린 분청사기를 통해 자신의 회화를 돌아보았다.

송 작가에게 있어서 백색의 종이 위에 무수히 투명한 점들을 찍어나가고, 원하는 농도의 색이 배어 나올 때까지 수십 번에 걸쳐 뒷면을 칠하는 행위는 도공이 하나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거치는 긴 과정을 환기한다.

부산시립미술관 소장품 ‘내적시선’(2001)은 송수련의 고유한 기법 및 소재적 특징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화면 위로 안료가 쌓이며 점차 짙어지는 일반적인 채색 기법과는 다르게 뒤에서부터 은은한 색이 배어 나오고 있다. 화면 위에 찍혀 있는 여린 점의 흔적은 마치 대나무 표면에 맺힌 이슬을 연상시킨다.

종이의 뒷면 즉 찰나에 사라질 이슬과 같이 미처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주변 미물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이며, 더 나아가 눈앞의 결과물보다는 이것이 탄생하기까지 거쳐야만 하는 지난한 노동의 행위에 가치를 부여하고자 했던 그의 삶의 태도가 반영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수연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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