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가 쌓일수록 세상과 벽을 더 쌓았다 [부산 고립청년 리포트]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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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고립청년 리포트] 상. 고립청년 4인의 목소리

일러스트=류지혜 기자 birdy@ 일러스트=류지혜 기자 birdy@

〈부산일보〉 취재진이 만난 부산 고립청년은 미디어에서 그리는 전형적인 은둔형 외톨이 혹은 니트(NEET·구직 단념) 청년과는 달랐다. 이들은 방에 칩거하며 가족에게 기생하는 부정적 이미지로 묘사돼 왔지만, 일부 극단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어린 시절 겪은 가정폭력과 학교폭력, 직장생활의 어려움 등으로 상처를 받고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회 활동을 시도했다가 여러 이유로 사회와 벽을 쌓고 고립청년이 된 이도 많았다. 〈부산일보〉 취재진은 고립청년 4명을 어렵사리 만나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다.

“저는 지금도 정상과 은둔의 경계에 있어요. 지금도 사실 많이 힘들어요. 그렇지만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봐서라도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힘들어도 일을 해보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지난 23일 부산 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은둔형 외톨이 A(38·남) 씨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말을 이었다. “은둔할 때는 세상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가 전혀 없었어요.” 누구에게도 제대로 풀어놓기 어려웠던 얘기가 많은 듯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3년여간 은둔 생활을 하다가 최근 직장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부산의 한 대학을 졸업하고 제조업에 종사했던 A 씨는 은둔에 돌입하기 전 7년간 일했지만, 마음을 붙이지 못해 여러 번 이직했다. 육체적으로 힘든 생산직 업무에 직장에서 겪은 대인관계 어려움, 마음의 상처가 쌓여 급기야 번아웃을 겪었다.

“제가 겪었던 직장들은 사람들이 대체로 기가 세고 공격적이었어요. 하루는 일하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피가 철철 나고 뼈가 다 보일 지경이었는데, 저보고 운전해서 병원에 가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퇴사하고 보상심리로 한 1년 동안은 아무도 안 만나고 누워서 지내는 생활을 했어요. 거의 낮에는 집 밖을 나가지 않고 밤에 가끔 산책하거나 편의점에 가고… 당시에는 과부하가 와서 전원이 나간 느낌이었어요.”

A 씨는 여태껏 감당하기 버거운 고충이 많았지만, 마음 편히 이를 터놓을 공간이 없었다는 점도 토로했다.

“인생이 숨 막힐 정도로 계속 힘들었는데, 힘들다고 얘기하려니 사회적으로 뒤떨어지는 사람이 되는 느낌이었어요. 가정폭력에 학교에서도 왕따, 고등학교 때는 대인기피증이 있어서 치료받기도 하고…. 그런 상황이 이어지니까 군 생활도, 사회 적응도 힘들었어요. 그게 눈덩이처럼 쌓이면서 어느 한순간에 ‘펑’하고 터져버렸던 것 같아요.”

“종종 혼자 있는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서 은둔형 외톨이가 된 게 아닐까 생각해요. 저는 아직 사람들 시선이 두려워서 마트 가는 것도 무서워요. 편의점도 야간에만 가고, 다 잠든 시간에 혼자 산책하고 낮에도 항상 암막 커튼을 치고 지냅니다.”

B(34·여) 씨는 어릴 때부터 가정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가 무서워 홀로 방에만 있는 것이 습관이 됐다. 폭력에 시달리다 8살 때 처음으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이 부친 말만 듣고 특별한 조치 없이 되돌아간 것이 큰 상처로 남았다.

“당시에 경찰은 저에게 굉장히 큰 존재였는데, 그 사람들마저 등을 돌려버리니까…. 이제는 나라가, 이 사회가 나를 전혀 지켜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에 대한 불신도 커져서 누구도 믿지 못했던 것 같아요.”

B 씨가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왔다고 고백한 기간은 장장 13년. 아버지의 상습적인 폭력과 폭언으로 자존감을 잃었고,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못해 사회적·정서적으로 고립됐다. 특히 코로나19가 생기고는 2년 가까이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집에서만 지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복지사로 일했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지는 폭력과 식모살이를 강요하는 가정 내 괴롭힘에 집을 떠났다. 집을 나와 찜질방을 전전하며 쪽잠을 자기도 하고 노숙자 쉼터에서 반년간 생활하기도 했다.

“겉으론 정말 화목해 보이는 가정이었거든요. 그런데 속으론 그렇지 않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항상 ‘네가 잘못했다’, ‘네 탓이다’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라왔고, 폭력도 일상이 되면서 제 삶이 파괴된 것 같아요. 밖에 나가서 누구한테 ‘나 집에서 맞고 있어’라고 얘기하고 다닐 수도 없잖아요. 또 무슨 일이 닥쳐도 ‘다 내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성인이 되고 나서는 정말 ‘살아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B 씨는 여전히 고립청년이다. 생업을 위해 일터에 나가지만, 회사 이외에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오랫동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누군가 만나는 것이 어렵고 ‘기를 빨리는’ 느낌을 받아 혼자가 마음이 편한 것이다.

개인적인 가정 폭력이 아니더라도 청년이 심리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다고도 했다. “코로나19가 덮쳤을 때 취업이나 경제적 부분이 해결이 안 되면 심리적으로 더욱 위축되니까 타인을 보면서 주눅이 들기 쉬웠거든요. 결국 환경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렇게 되기 전에 내 얘기를 솔직히 터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런 기회를 더 빨리 찾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C(29·남) 씨는 지난해 7월 직장을 그만둔 뒤 7개월 동안 사회와 고립됐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는데 대학 졸업 이후 백화점 서비스업으로 취업해서 나름대로 칭찬도 받고 괜찮게 지냈어요. 그런데 전공을 살려보고 싶어서 관련된 직종으로 이직했는데 막상 적성에 안 맞았고 직장 동료와도 잘 지내지 못했고요. 점점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졌습니다.”

일을 위해 끝까지 달려가서 도전했는데 결국 실패자가 됐다는 생각이 강했다. “부모와 같이 살아서 주거 비용, 식비가 해결되다 보니 친구도 만나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고요. 가끔 택배 같은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벌고 살았습니다.”

점점 자기중심적인 성향으로 변해서 친구를 만나도 대화는 엇나갔고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변의 또래는 자리를 잡았는데 나는 집에만 있다 보니 스스로 비참하고 다시 시작하기 두렵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대인관계가 쉽지는 않았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문제가 생겼고 회사를 그만둔 이후에는 더욱 세상에 벽을 세웠습니다.”

C 씨는 졸업하면 취업, 취업하면 결혼으로 이어지는, 사회가 청년에게 요구하는 ‘정해진 생애 주기’에서 한 번 미끄러지고 나서 느낀 점이 많다고 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면 무조건 취업하고 일을 해야 하는 분위기 때문에 다른 소중한 것을 많이 못 본 것 같다”며 “고립 이후 다시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세상에 나온 뒤 주변에도 손을 내밀어 주는 좋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D(34·남) 씨는 밝은 모습으로 취재진 앞에 나타났다. 고립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직장을 그만둔 지 1년 5개월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퇴사 이후 6개월 동안 이력서를 보내고 취업 활동을 했지만 취업이 되지 않자 자신감을 잃고 사회와 단절을 택했다.

“조직적 괴롭힘은 아니었지만 직장 내 수직적 관계에 적응을 못 했습니다. 일은 그래도 할 만했는데 인간관계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금방 취업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서류는 통과해도 면접에서 자꾸 떨어지는 일이 반년 동안 계속되니까, 스스로 다 놓아 버렸던 것 같습니다.”

D 씨는 무난한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사회에서 상처를 받고 고립을 선택한 경우다. “3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번 돈을 까먹으면서 혼자 살았습니다. 시간이 많으니 집에서 영화를 참 많이 봤는데, 분명히 제목을 보면 본 영화지만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멍했고요. 잠도 정말 많이 잤는데, 지금 돌아보니 우울증 증세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퇴직과 고립 이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광고를 보고 부산 구직단념 청년을 지원하는 ‘위닛캠퍼스’에도 스스로 등록했다. D 씨는 3월부터 시작한 ‘위닛캠퍼스’ 활동을 통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과 함께하며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

“다시 취직하고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마음 한켠에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위닛캠퍼스는 내가 뭘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무한 지지’의 공간이더라고요. 이제 다시 이력서를 내고 한 발짝 떼보려고 합니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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