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탈(脫)달러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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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힘은 군사력과 달러에서 나온다. 그동안 달러가 없는 국가는 국제 교역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공고한 ‘달러 패권’에 균열이 가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브라질에서 열린 남미 12개국 정상회의에서는 달러를 대신할 지역 공통 화폐를 도입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 같은 움직임을 주도하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이미 ‘수르’(남쪽이라는 뜻)라는 화폐 이름까지 공개했다. 실제로 공통 화폐가 성사된다면 유럽연합처럼 남미의 경제 협력과 통합을 크게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원자재 시장에서 달러의 영향력은 여전하지만, 위안화 사용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중국과 브라질이 양국 교역에서 달러를 배제하고 자국 통화인 위안-헤알로 거래한다는 합의가 대표적이다. 중국이 달러 패권에 도전한 결과 미국의 뒷마당이자 남미 최대 국가인 브라질이 호응한 것이다. 사우디 역시 중국과 석유 대금의 위안화 결제 확대를 활발히 논의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양국 교역에서 위안-루블화 결제액이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 비해 무려 90여 배나 늘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석유의 주요 수입국인 인도 역시 양국 교역에서 루블-루피화 결제를 확대했다.

최근 국제사회의 탈(脫)달러 움직임은 미국이 러시아의 외환 및 금융거래를 막는 제재를 하면서 촉발됐다. 미국의 ‘달러 무기화’를 본 각국이 달러 의존도를 줄여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행동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국제 금융 시스템을 무기화하면 이를 대체할 대안이 나올 수밖에 없다. 동남아 국가들까지 달러를 대체할 통화 시스템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디지털 결제 시스템의 확산으로 탈달러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물론 현재까지는 세계가 다극화하고 달러가 덜 사용될 수는 있지만 본격적인 탈달러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중·일을 떠올리면 아쉽기만 하다. 중국의 경제력은 세계 2위, 일본 3위, 한국 12위이다. 한·중·일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떼 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2020년에는 중국 양회에서 한·중·일 3국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 디지털화폐를 만들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중국 위안화, 일본 엔화, 한국 원화, 홍콩 달러화 등 4개 통화를 묶자는 이야기였다. 일찍이 안중근 의사는 동양 평화론에서 “3국 공동의 은행을 설립하고, 공용 화폐를 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만 바라보는 한국 외교, 이대로 괜찮을지 걱정스럽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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