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확률적 앵무새 죽이기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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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전략국장

메타버스·NFT와 달리
생성 AI는 현재형 ‘쓰나미’
편리한 도구·기능 제공 덕분
부작용·장점 논쟁 모두 중요
문제는 변화 회피하는 자세
AI 시대 요구 무시하면 퇴보

생성형 AI(인공지능)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웹3.0(블록체인·NFT)과 메타버스(AR·VR·XR)가 장밋빛 미래로 그려지는 것과 대비된다는 의미에서다.

우려와 반론, 심지어 무시하는 의견까지 맞선다. AI 개발을 6개월 멈추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자는 전문가들의 제안은 초반 주목 받았으나 군비 경쟁에 맞먹는 전 세계 IT 기업 간 격전을 막지 못했다.

미국 SF 작가 테드 창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이라는 명명이 틀렸다며 ‘응용 통계(applied statistics)’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계에 의식이 없기 때문인데, 이 이유로 ‘기계 학습(머신 러닝)’이라는 표현도 반대했다. 배우고 가르치는 건 의식과 의식 간에 이뤄져서다.


동일한 문제 의식에서 생성 AI는 ‘확률적 앵무새(stochastic parrots)’에 비유된다. 수집한 문장 중 통계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문맥을 재구성해서 보여 주는 기계일 뿐이라는 관점이다. 생성 AI가 흉내를 낼 뿐 인간 고유의 창작을 할 수 없다는 비아냥이 들어 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앵무새? 그래서 어쩌라고!' 식이다. 생성형 AI를 편리한 도구 혹은 기능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그 점이 메타버스, 블록체인, NFT 보급과 다른 양상이다.

대화형 챗GPT가 첫선을 보인 이래 반년을 넘긴 지금 구글 '바드'와 MS '코파일럿', 네이버 '서치GPT' 등 헤아릴 수 없는 서비스가 출시됐거나 나올 예정이다. 이들은 지식과 정보, 아이디어를 자연스러운 대화체로 제공하고, 여행 스케줄을 짜 주고, 영어 회화를 도우며 그림과 동영상은 물론 코딩 작업까지 대신해 준다. 우리의 생활과 업무 깊숙이 들어와 버린 것이다.

지능(의식)이 있건 없건, 사용자에겐 유용한 도구 혹은 유능한 비서일 뿐이다. 그런데 일자리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씁쓸한 대목도 있다.

'과장 좀 보태면 연봉 5천 신입보다 월 20달러 GPT가 나음.'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한 IT 업체 직원이 올린 챗GPT 사용 후기다. 신입 직원에 요령을 가르쳐 가면서 일을 시키는 것보다 AI로 얻은 코딩 결과가 낫다는 것이다. 도제식으로 가르쳐 개념이 잡히는 시간과 노력보다 좋은 프롬프트를 찾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말이다.

다른 커뮤니티에도 유사한 글이 넘쳐난다.

'하루 만에 내 일을 사랑하게 만들었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동영상 생성 서비스 '미드저니'의 도입 이후 3차원 그래픽 모델 '창작자'에서 프롬프트 '입력자'로 전락하자 자괴감에 빠졌다는 하소연이다. 아티스트로서의 자부심은 사라지고 '미드저니'가 쏟아 내는 캐릭터 뒤치다꺼리 신세다. 물론 그 덕분에 회사는 작업 시간과 인력을 대폭 절약했다.

직업 현장에서 위 사례가 확산되면 신입을 뽑을 필요가 없게 되고 고착화되면 탈숙련화로 가게 된다. 숙련의 과정을 AI가 대체하면 저숙련 일자리가 대체되고 저임금화 수순이 뻔하다. 학습과 경험의 쓸모가 퇴색되고, 프로페셜널리즘(전문직주의) 기반 위에 서 있던 공인 교육과 자격증 체제 균열로 이어질 것이다.

AI가 일으킨 쓰나미는 일자리를 넘어 전방위적으로 진격 중이다. 사회 체제의 골격을 뒤흔들 수준이라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생성 AI의 허점과 문제점, 그로 인한 부작용은 사회적 의제로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

AI로 인한 정보 집중과 남용, 종속을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통제 장치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AI의 윤리적 책임 기준은? 일자리 소멸에 대응한 '로봇세' 도입은? 인터넷에 딥 페이크 조작 영상 혹은 AI가 무분별하게 베껴 쓴 뉴스가 범람한다면? 저작권과 프라이버시 침해는?

이처럼 AI의 부상에 신중론이 무성하지만 옹호론도 만만치 않다. 양측은 팽팽한 논쟁 중인데, 이는 AI가 안착할 때까지 필수불가결한 긴장감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디스토피아적 전망과 낙관적 기대 밖에 있다. 작금의 변화를 회피하려는 자세다. 예컨대 일자리는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AI를 잘 다루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식일 것이다. 또 AI 혁신에 성공한 기업이 경쟁 우위를 가질 것이다.

작금의 AI 혁명은 일회성 유행이 아니다. '확률적 앵무새'라고 무시해도 없앨 수 있기는커녕 스스로 뒤쳐질 뿐이다. 돌이킬 수 없는 사회 변동으로 급물살을 타 버렸다. 산업화, 정보화에 이은 AI 시대의 도전에 미래가 걸려 있다.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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