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사이코패스와 외톨이, 무엇이 또래 살인사건의 주범인가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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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상 사회부 차장

정유정의 머릿속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본 적도 없는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그렇게 잔혹해질 이유가 없어 보였다. 허탈하게도 정유정은 “사람을 죽여 보고 싶었다”라고 답했다. 순수한 살인 욕구라는 대답은 더 이해가 되지 않기에, 오히려 “도대체 왜?”라는 의문만 늘었다.

경찰 조사 과정에 정유정은 사이코패스라는 진단을 받았고, 부산 금정구 또래 살인사건의 배경이 설명되는 듯했다. 사이코패스의 살인은 처음부터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면, 더는 혼란스러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계는 우리 중 적게는 1%에서 많게는 7%가 사이코패스 진단이 나온다고 보고 있다. 대한민국에만 최소 수십만 명이 사이코패스 성향이라는 거다. 이들이 모두 정유정처럼 잔혹하다면, 세상은 살인이 넘치는 무법천지일 것이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이코패스라고 모두 살인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러면 여전히 또래 살인 사건 발생 이유는 완벽히 이해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흉흉한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오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은 상당히 살인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다. 2019년 유엔마약범죄사무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0만 명당 살인 범죄율은 0.6명이다. 영국, 독일, 스웨덴 등 웬만한 유럽 선진국도 범죄율이 1명 안팎 수준이다.

살인 범죄율이 가장 낮은 국가는 일본 0.2명, 룩셈부르크 0.3명, 노르웨이와 스위스 0.5명 순이었다. 사무라이를 추앙하던 일본과 무시무시한 바이킹의 후손들인 세운 노르웨이 등에서 살인이 적은 걸 보면, 살인은 딱히 민족성과도 무관한 듯하다. 반면 총기가 허용된 미국은 5.3명으로 우리나라의 9배이고, 마약 조직이 건재한 멕시코는 24.8명이나 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경제와 복지가 잘 갖춰질수록 살인 사건이 적고, 후진국에 가까울수록 살인 범죄율이 올라간다. 이런 뚜렷한 추세는 외부 환경적 요인이 살인 발생과 예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의미한다.

그럼에도 간과할 수 없는 게 일본, 룩셈부르크에서도 분명 살인이 일어난다는 거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인 스웨덴, 네덜란드가 우리보다 살인 사건 범죄율이 높다는 것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즉 환경적 이유만으로 살인 사건 발생을 온전히 설명할 수도 없고,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도 누군가는 살인을 저지른다는 뜻이다.

고유한 성향을 가진 인간은 개별적 존재이자 타인과 소통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니 인간의 모든 의도된 행동은 고유의 개별성과 세상과의 소통이 상호작용한 결과로 봐야 한다. 정유정의 살인도 개인적 성향과 무기력한 상태로 내몰린 외부적 요인 등이 맞물린 결과인 셈이다.

만일 일본이나 룩셈부르크에서 태어났다면, 혹은 은둔형 외톨이가 아니었다면, 정유정은 살인자가 되지 않았을까? 답은 알 수 없지만, 살인 욕구의 발현 가능성은 지금보다는 상대적으로 줄었을 것이다. 어차피 인간의 타고난 개별성을 조정할 수는 없다. 대신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하고 소외된 이들을 줄이는 등의 노력은 가능하다. 그렇게 살인 욕구의 발현 가능성을 낮춰 살인 범죄율이 0.1명만 줄어도, 연간 수십 명의 생명을 범죄로부터 구할 수 있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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