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글로컬'의 시대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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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국 경제부 산업팀장

로컬과 글로벌 경계가 무의미한 시대
부산이 놓친 복합리조트, 부메랑으로
낡은 룰도, 연고도 지역에는 도움 안 돼
시민에게 이로운 기업이 진짜 로컬기업

교육계가 글로컬 대학 사업을 놓고 떠들썩 합니다. 학령인구 감소에 맞춰 지역 대학이 몸집을 줄이면 정부에서 세계 무대에 설만한 역량을 키워주겠다는 게 글로컬 사업의 요지입니다. 글로컬은 로컬(local)과 글로벌(global)을 합친 신조어입니다. 가장 로컬한 것이 글로벌하고, 가장 글로벌한 것이 로컬하다는 의미지요. 정보와 통신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인식 폭은 지역과 관념을 넘어섰습니다. 이제 화두는 무한 이익 실현입니다.

교육 이야기를 하려고 글로컬을 언급한 건 아닙니다. 글로컬은 수도권 쏠림이 심한 한국에서 지방 도시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거든요. 희소가치는 있지만 열악한 인프라를 어떻게든 살려나가야 하는게 부산을 비롯한 여러 도시의 운명입니다. 글로컬하지 못한 낡은 정책적 판단은 도시의 운명을 가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년 전 부산시가 여론의 눈치를 보다 날려버린 카지노와 복합리조트가 ‘반(反) 글로컬’의 대표적인 예가 되겠죠. 보수적인 동아시아권에서나 통용되던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고집하며 북항에 6조 원이 넘는 복합리조트를 건설하겠다던 샌즈 그룹의 손을 뿌리친 게 부산시입니다.

당장 기자도 칼럼을 쓰던 손을 멈추고 마우스 클릭 몇 번이면 해외 카지노 사이트에 접속 가능한 세상이 됐습니다. 카지노를 허용하면 도시가 노름꾼으로 들끓고, 카지노를 내치면 청정 도시가 유지될 것이라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발상의 결과가 북항 랜드마크 부지 공모 불발입니다.

부산이 헛발질을 하는 사이 싱가포르와 마카오는 물론 그 완강하던 일본과 태국까지 태도를 바꿔 복합리조트 건설에 착수했습니다. 특히나 부산은 2025년 월드엑스포 이후 오사카와 나가사키의 복합리조트가 본격 가동되면 내·외국인 관광객이 빠르게 이탈하는 광경을 지켜봐야 합니다. 로컬의 낡은 룰을 고집하며 글로벌 사업자를 떠나보낸 대가를 혹독히 치르게 된 셈이지요.

부산이 애지중지하는 로컬 항공사도 조만간 갈림길에 설 듯합니다. EU와 미국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 승인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아시아나의 계열사인 에어부산은 분리 매각의 도마 위에 오를 상황이 됐습니다.

부산에서는 상공계가 2007년 창사 당시처럼 의기투합해서 에어부산의 지분을 사들이고 지배력을 높이겠다는 뜻을 보입니다. 그러나 로컬 기업이라고 해서 이번에도 이들에게 무작정 응원을 보내야 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죠. 지금은 에어부산이 없던 그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됐으니까요.

당시에는 과반이 넘는 지분을 확보해서라도 부산에 강한 로열티를 지닌 거점 항공사를 탄생시키는 게 급선무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에어부산은 김해를 모항으로 역대급 연 매출을 기대 중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지분 인수에 그치지 않고 파격적인 투자로 장거리 노선을 확충하겠다는 글로벌한 전략을 갖춘 사업자가 등장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물론, 로컬 기업이 그 약속을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그러나 대기업이든, 다국적 기업이든 인천 기반의 LCC와 경쟁할 만한 투자를 제시한다면 그 기업에도 가능성을 열어줘야 합니다. ‘지분만 사들여서 1대 주주로 올라서면 끝’이라는 얄팍한 생각을 갖고 있다면 지역 기업이라도 매를 들어야 하고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대기업에 목을 매던 부산시도 최근 자세를 바꾼 듯 합니다. 로컬 중견기업을 대기업까지 육성하겠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합니다. 글로컬 시대에 걸맞은 유연한 발상 전환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로컬 기업을 키우겠다는 부산시의 생각이 ‘대기업 유치 포기’는 아니겠지요. 이런 비난을 막으려면 대기업, 글로벌 기업과도 끊임없이 스킨십하며 접점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지난달 거제시의 대우조선이 한화에 인수합병됐습니다. 로컬 조선소가 대기업에 팔려 갔다고 한탄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거제시는 이제 한화라는 기업과 새로운 접점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기회로 어떤 이익을 실현할지 고민해야 할 겁니다. 로컬 기업이라야 로컬의 이익을 대변할 것이라는 생각은 빨리 버려야 합니다. 에어부산도, 북항 재개발도 모두 부산에게는 글로컬한 연결고리가 될 수 있습니다.

거친 맛은 있지만, 부산에서 ‘우리가 남이가?’는 최고의 찬사 중 하나입니다. 부산에 본사가 있어도 남이 될 수 있고, 뉴욕에 본사가 있어도 내 편이 될 수 있는 겁니다. 부산과 부산 시민에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는 기업이 진짜 로컬 기업입니다. 바야흐로 글로컬의 시대가 아닙니까.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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