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몇 편 못 튼다고 BIFF 못 하는 것 아냐"… 조종국 인식 폭로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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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사퇴 요청하자 충격 답변
수석 프로그래머, SNS서 폭로
“운영위원장직 작년 갑자기 추진”
영화계 ‘결국 자리 욕심’ 비판

전주국제영화제 전 집행위원장
“이용관, BIFF 사유화” 쓴소리


지난해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레드카펫 행사가 열리고 있다. 부산일보DB 지난해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레드카펫 행사가 열리고 있다. 부산일보DB

부산국제영화제(BIFF) 조종국 신임 운영위원장이 ‘자진 사퇴’ 요청에 “영화 몇 편 못 튼다고 영화제 못 하는 거 아니다”라고 대응했다는 내부 폭로가 나왔다. 이용관 이사장이 측근을 ‘공동 위원장’에 임명해 불거진 ‘영화제 사유화’ 의혹이 이번 BIFF 사태 본질이라는 외부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조 위원장이 자신의 해촉 안건이 상정될 임시총회를 앞두고 여론전을 시작하자 BIFF 내외부에서 쓴소리가 표출되고 있다.

BIFF 남동철 수석 프로그래머는 지난 19일 SNS와 BIFF 인트라넷 게시판에 글을 올려 “자신을 반대하는 영화계를 배척하며 영화 몇 편 안 틀어도 그만이라는 태도를 취하는 위원장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조 위원장이 총회에 앞서 자신의 정당성을 호소하는 활동을 전개해 이 사안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며 의견을 밝히기 시작했다.

BIFF 이용관 이사장이 지난 15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 열린 5차 이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부산일보 DB BIFF 이용관 이사장이 지난 15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 열린 5차 이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부산일보 DB

남 프로그래머는 조 위원장이 ‘영화 몇 편 못 틀어도 괜찮다’고 답한 점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운영위원장 선임 이후 영화계 여러 단체에서 조종국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며 “대대적인 보이콧에 대한 우려 때문에 그를 만나 자진 사퇴를 설득했다”고 밝혔다. 이어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올해 영화제를 위해 양보해 주면 안 되겠냐고 말했다”며 “돌아온 답변은 ‘영화 몇 편 못 튼다고 영화제 못 하는 거 아니지 않느냐’였다”고 했다.

그는 영화를 포기하는 대신 자신의 자리를 지키겠다는 사람이 영화제 위원장 자격이 있는지 물었다. 남 프로그래머는 “영화제에서 영화 몇 편은 맥락에 따라 절대적 중요성을 가진다”며 “BIFF에서 당연히 볼 거라 기대한 작품을 운영위원장 존재 때문에 볼 수 없다면 그 손실은 누가 책임지는가”라고 했다. 이어 “그는 두 차례 이사회 사퇴 권고에도 ‘거취를 표명하라 했지 사퇴하라 한 게 아니다’라고 하며 끝까지 물러나지 않겠다고 했다”면서 “영화 몇 편 못 틀어도 영화제 하는 데 지장 없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BIFF 이사진이 지난 15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 열린 5차 이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부산일보 DB BIFF 이사진이 지난 15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 열린 5차 이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부산일보 DB

BIFF와 같은 대형 영화제는 수백 편의 작품을 선보이지만, 주요 작품 몇 편은 그 위상과 정체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BIFF는 제작 국가를 제외한 나라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전 세계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월드 프리미어’ 작품 등으로 매년 승부를 본다. 이번 사태로 한국뿐 아니라 해외 주요 제작사와 감독 등이 출품을 보이콧하면 아시아 최고 영화제라는 위상에 금이 가는 건 시간문제다.

영화계에서는 위원장이 ‘영화 몇 편’에 불과하다고 언급한 건 결국 영화제보다 자리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영화인 A 씨는 “프로그래머들은 영화 몇 편을 두고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세계 영화제와 경쟁을 한다”며 “그 결과가 영화제 위상과 정체성을 결정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들이 생각하는 가치를 가벼이 다루고 공감하지 못하는 인사를 위원장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 본다”며 “그런 말을 꺼내는 건 영화제 관계자가 할 말은 아니다”라고 했다.

BIFF 조종국 운영위원장이 지난달 15일 간담회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부산일보 DB BIFF 조종국 운영위원장이 지난달 15일 간담회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부산일보 DB

앞서 조 위원장은 지난 16일 한 달이 넘는 침묵을 깨고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남 프로그래머를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운영위원장 직책이 2018년 ‘BIFF 비전2040 특별위원회’ 논의를 거쳐 도입됐다며 “‘운영위원장 같은 건 처음 듣는다’며 저에게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동철) 프로그래머는 해당 특위 위원이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남 프로그래머는 <부산일보>에 “5년 전 특위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논의하는 자리였고, 제가 운영위원장을 도입해야 한다고 얘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그동안 운영위원장은 수면에 떠오른 적 없다가 지난해 말 갑자기 추진된 걸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조 위원장은 20일 “통화를 하고 싶지 않다”며 전화를 끊었고, 남 프로그래머 SNS 글에 대해 묻는 문자에 20일 오후 6시 현재까지 답변하지 않았다.


BIFF 이용관 이사장이 지난 2일 오후 영화의전당 비프힐 대회의실에서 열린 4차 이사회를 마치고 굳은 표정으로 회의실을 빠져나오고 있다. 부산일보 DB BIFF 이용관 이사장이 지난 2일 오후 영화의전당 비프힐 대회의실에서 열린 4차 이사회를 마치고 굳은 표정으로 회의실을 빠져나오고 있다. 부산일보 DB

‘공동 위원장’ 제도를 신설한 뒤 측근을 앉히며 이번 사태를 촉발한 이 이사장에 대한 비판도 계속되고 있다. 이준동 나우필름·파인하우스필름 대표(전주국제영화제 전 집행위원장)는 지난 19일 SNS에 “만약 이사장 직이 민간에 이양되지 않아 박형준 부산시장이 측근을 BIFF 공동 위원장에 임명했다면 영화계 전체는 물론 이용관과 조종국이 누구보다 격렬하게 반대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게 지금 벌어지는 BIFF 사태의 본질”이라며 “이사장인 이용관의 전횡, 다른 말로 영화제의 사유화”라고 언급했다.

부산시의회도 이번 사태를 계속 주시하고 있다. 20일 시의회 행정문화위원회는 ‘BIFF 사태 해소’를 위한 2차 간담회를 열어 지역 영화계 의견을 들었다. 21일에는 ‘BIFF 혁신을 위한 부산영화인모임’이 BIFF 사태 수습을 위한 토론회를 연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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