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두 개의 토르소가 있는 방/문저온(19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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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손이 돋기를

악수를 하고 네 뺨을 치기를

가까이 가까이서 너를 만지기를

볼을 쓸고 목을 조르기를

다리라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러니 네가 오기를

없는 다리로 굴러오기를

없는 손발로 차렷하기를

네 가슴을 가르고 손을 꺼내기를

꺼낸 손을 가슴팍에 붙여 주기를

실수失手를 부디 만회하기를

피 묻은 악수를 하고 손을 뽑아 던지기를

- 문예지 〈문학과의식〉 2020 여름호 중에서


토르소는 이탈리아어로 ‘몸통’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리스 로마의 고대 유적지에서 처음 발견됐다. 당시 미술계가 이 훼손된 조각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머리와 팔다리가 없지만, 토르소만이 가진 아름다움을 발견해냈다. 19세기에 와서는 조각의 한 형태로, 토르소라는 용어가 자리매김되었다. 시인은 두 개의 토르소가 있는 방에서 시적 아름다움을 뽑아내고 있다. ‘그러니 네가 오기를/없는 다리로 굴러오기를 /없는 손발로 차렷하기를’에서처럼 토르소에서 얻은 그로테스크한 문장들엔 이 몸통의 형태처럼 서술 문장들이 생략돼 있다. 좋은 시는 생략에서 오는 것. 시를 기다리는 일 또한 ‘없는 손발로 차렷하기’ 아닌가.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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