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일 수 있는 건 식비뿐… 한 푼이라도 아끼려 약속 안 잡아요”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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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덮친 ‘고물가 풍경’

삼겹살·김밥 5년 전보다 27~40%↑
한 끼 비용만 최소 1만 원 수준
교내 1000원 아침밥 이용 급증에
조리 노동자 부족해 업무 과부하
가성비 좋았던 대학가 음식점도
가격 올리며 학생 발걸음 ‘한산’

대학생들은 고물가 탓에 주로 저렴한 학교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등 소비를 최소화하고 있다. 부산대 학생들이 평일 아침 ‘천 원 아침밥’을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모습. 나웅기 기자 대학생들은 고물가 탓에 주로 저렴한 학교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등 소비를 최소화하고 있다. 부산대 학생들이 평일 아침 ‘천 원 아침밥’을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모습. 나웅기 기자

한때 20대 사이에서 소비 트렌드로 ‘가심비’가 유행했다. 가격보다 '심리적' 만족을 중요시하며 소비하는 걸 말했다. 하지만 고물가 시대에 가심비는 옛말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대다수 20대는 이전 세대보다 더 가성비를 고려하거나 아예 소비 자체를 최소화하고 있다. 청년층의 반강제적 소비 형태 변화는 자영업자와 노동자에게 그 여파가 미친다. 고물가의 그늘은 전방위적으로 짙어진다.

■천정부지 물가에 식비부터 최소화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가 지난 3월 대학생 20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최근 물가 인상 체감 여부 질문에 95.1%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물가 인상으로 가장 부담되는 지출 항목으로는 56.1%(1164명)가 ‘식비’를 꼽았다. 응답자 중 77.2%는 최근 물가 상승 이후 가장 먼저 줄이게 된 항목도 식비(1603명)라고 답했다. 일상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식비마저 부담이 된다는 건 다른 지출은 이미 줄일 만큼 줄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식자재와 외식 품목 등의 물가가 상승세를 이어가자, 학생들의 한숨 소리는 더 깊어진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소비자가 많이 찾는 김치찌개 백반, 삼겹살 등 8개 외식 품목의 지난달 부산 평균 가격은 5년 전인 2018년 5월에 비해 평균 27.0% 상승했다. 부산에서 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은 외식 품목은 김밥이었다. 한 줄에 지난달 2900원으로 5년 전에 비해 40.0%나 치솟았다. 같은 기간 비빔밥(1인분 보통기준)은 6600원에서 8529원으로 29.2%, 짜장면(1인분 보통)은 4714원에서 6071원으로 28.8% 뛰어 상승률 2, 3위를 기록했다.

한 끼를 해결하려면 최소 1만 원 가까이 들다 보니 수입원이 마땅치 않은 학생은 끼니를 거르는 선택까지 한다. 소비를 더 이상 줄일 항목이 없다 보니 밥값 걱정에 친구와의 약속도 줄인다.

동아대 재학생 윤 모(21) 씨는 “월세와 교통비가 고정적으로 나간다.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식비뿐이다. 식비를 줄이기 위해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이제는 재료비마저 올라 요리하기도 부담스러워 저렴한 가성비 식당을 찾아가 식사를 해결한다”며 “대학교 근처 술집의 안주 가격도 많이 올라 친구와의 술자리도 큰 부담이 돼 약속을 거의 잡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생 발길 끊긴 대학가 상권

청년층을 덮친 고물가 여파는 청년층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을 상대하는 주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학생은 식비 상승 탓에 저렴한 교내 학생 식당으로 몰리지만 이에 대한 대학의 준비는 미비하다. 식당은 노동자 희생으로 운영되는 셈이다.

부산대 금정회관은 학기 중 평일 이른 아침에는 ‘천 원 아침밥’을 먹으려는 학생으로 가득 찬다. '천 원 아침밥'은 정부와 대학이 대학생에게 양질의 식사를 1000원에 제공하는 사업이다. 부산에서는 부산대를 포함해 총 8개 대학이 '천 원 아침밥'을 시행 중이다. 부산대는 2016년부터 자체적으로 '천 원 아침밥'을 시행했는데 최근 고물가 탓에 수요가 늘었다. 부산대에 따르면 지난해 1학기와 비교해도 15% 정도 식사 인원이 늘었다. 이번 학기에는 가장 많을 때에는 240명이 아침밥을 먹었다.

그러나 이전과 다름없이 조리 노동자 2명이 아침밥을 준비한다. 아침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노동자 2명은 아침밥도 먹지 못하고 정시 출근시간보다 1시간 이른 오전 6시 20분에 출근한다. 조리장은 학생에게 따뜻한 아침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출근 시간도 아니지만 미리 나가 준비한다. 업무 과부하로 조리 노동자의 건강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다가오는 2학기가 걱정되는 이유다.

학교 밖 대학 상권은 학생 발길이 끊겨 정반대의 모습이다. 그나마 가성비가 좋던 국밥부터 밀면, 분식 등의 가격도 계속 올라 학생에게는 부담스러운 한 끼가 됐다. 부산대 학생 사이에서 가성비가 좋기로 유명한 북문 식당가를 살펴보면 김밥 한 줄에 500~1000원이 올랐고 밀면도 1000원 오른 6500원이었다.

부경대 인근에서 밀면집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대학가 상권 주 소비층은 학생이기 때문에 가격을 올리기가 부담스럽지만 재료비가 너무 올라 가격을 안 올릴 수 없었다. 가격이 오르자 학생이 이전보다 적게 찾아오는 게 느껴져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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