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베이비 박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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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밤, 소영(이지은)은 부산 어느 교회의 베이비 박스 바닥에 아기를 두고 간다. 세탁소를 운영하지만, 늘 빚에 시달리는 상현(송강호)과 보육원 출신 동수(강동원)가 몰래 데려간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아기를 찾아 나선 소영이 경찰에 신고하려는 순간, 상현과 동수가 영아 입양 브로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를 두고 얽힌 이들의 로드무비다.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첫 한국 영화고 지난해 75회 칸영화제에서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아 화제가 됐다.

영화는 생명의 소중함과 가족의 의미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지만 베이비 박스를 둘러싼 현실은 영화처럼 훈훈하지도 감성적이지도 않다. 희망적 결말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아기를 버릴 수밖에 없는 비루한 현실과 영아 유괴, 성매매 등 범죄의 어두운 그림자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나라 베이비 박스는 2009년 서울의 한 교회에서 처음 시작됐다. 원래는 유럽 중세에 시작된 장치다. 현재 미국, 독일, 프랑스, 폴란드, 일본 등 20여 개국에서 운영 중이다. 우리보다 먼저 도입된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버려지는 아기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경기도 수원의 아파트에서 30대 여성이 출산한 신생아 2명을 살해하고 냉장고에 보관한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줬다. 사건의 출발점이 된 감사원 감사 결과 지난 8년간 신고되지 않은 신생아가 2236명에 달한다는 소식에 온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영화 ‘브로커’처럼 ‘유령 아기’ 브로커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 같지만 이 기간 베이비 박스에 들어온 아기가 1400여 명이다. 언제든 관심만 있으면 알 수 있었던 우리 사회의 민낯이라는 이야기다.

정부와 정치권이 뒤늦게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도입을 서두르고 있는데 입법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보호출산제는 임신부가 양육을 원하지 않을 경우 안전한 환경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도와줘야 한다는 주장과 양육 포기를 부추기고 아동의 정체성에 대한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반론이 팽팽하다. 그러나 근본은 국가가 누구든 아기를 안전하게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베이비 박스가 필요 없는 환경 말이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임신한 여성은 속옷, 젖병, 기저귀, 담요 등 신생아에게 필요한 유아용품을 정부로부터 지급받는데 이를 베이비 박스라 부른단다. 우리로서는 부럽기만 한 현실이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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