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진경대사탑비 왜곡에 대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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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스님 (사)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신라 말에 한 스님이 계셨다. 법명은 심희요, 사후 왕에게 받은 시호는 진경이다. 선법(禪法)에 정통하셨고 구산선문의 하나인 봉림산문의 실질적인 개조로 추앙받는 분이다. 수행과 덕을 겸비한 그를 백성뿐만 아니라 국왕도 흠모하였다. 서기 923년 70세에 세상과 인연이 다해 입적했다. 스님을 존경하던 경명왕은 친히 비문을 지어 애도하며 그의 덕을 기렸다. 비문은 왕이 직접 지은 흔치 않은 것으로, 우리의 소중한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탑비가 세워진 뒤 1000여 년이 지난 지금 비문의 해석을 두고 강단의 주류 사학계와 민족사학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비문에 나오는 스님의 조상이 누구인지와 선조의 출신지가 어디인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선조의 출신지라고 여겨지는 ‘임나’라는 지명 때문이다. 과거 일제가 한반도를 침략할 때 ‘임나일본부’라는 터무니없는 명분을 앞세웠고 그 당시 사용됐던 지명이 임나였다. 임나의 지명 문제는 일제의 패망과 함께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해방 후에도 임나일본부는 군사 침략 기관이 아닌 ‘사신설’ ‘교역기관설’ 등으로 모양을 바꾸며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임나가 가야라는 ‘임나가야설’의 근원은 일제가 1920년부터 우리 민족을 세뇌시키기 위한 교육 체계인 <심상소학역사보충교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일제는 고토 회복이라는 침략의 명분을 얻기 위해 가야를 임나로 둔갑시키는 교육을 실시한다. 그 근거로 광개토태왕릉비의 임나가라, <삼국사기> ‘강수열전’의 임나가량, 진경대사탑비의 임나 왕족에서 나오는 세 개의 임나를 예로 들며 임나가 곧 가야임을 교사들에게 가르치게 했다.

이것이 한반도 임나설의 뿌리이다. 한반도에 임나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필자는 싫어도 ‘임나가야설’을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반도 침략의 명분으로 만든 가공의 침략 논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 필자가 연구하는 분야는 서기 48년 허왕후의 도래와 함께 전해진 가야불교이다. 김해와 인연한 까닭으로 우연한 기회에 가야불교를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가야사까지 들여다보게 되었다. 가야사를 연구하다 보면, 반드시 임나를 만나게 되는데 그래서 임나의 세 가지 근거를 검토해 보니, 모두가 해석의 문제가 있음을 파악했다. 사실 임나라는 용어는 우리의 기록엔 겨우 세 번 나온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에는 216회, 815년 고대 일본의 성씨를 모은 <신찬성씨록>엔 10여 회나 등장한다. 즉 임나는 일본 열도에 있었다는 말이다.

필자는 2021년 <경남매일신문>에 ‘진경대사탑비의 새로운 해석’이란 칼럼을 기고했다. 진경대사탑비에 나오는 임나의 기록을 검토해 본 결과, 기존 해석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필자의 주장을 기고했던 것이다. 그런데 1년 반이 흐른 최근 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는 <부산일보>에 ‘반지성주의적 역사 왜곡을 경계한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필자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였다. 필자의 부족한 글에 관심을 가져 주신 데 대해 감사하며 질책한 부분은 향후 연구를 통해 보완하고자 한다.

이 교수는 위의 글에서 ‘대사의 이름은 심희요, 속성은 신김씨(新金氏, 김해 김씨)이니, 그 선조는 임나의 왕족이자 초발(草拔, 수로왕)의 성스러운 가지이다. 이웃 나라의 침략에 괴로워하다가 우리나라(신라)에 투항하였다. (스님의) 먼 조상인 흥무대왕(김유신)은…’이라고 해석했다.

이 교수께 몇 가지 여쭙고자 한다. 과연 김해 김씨가 신김씨로 불린 적이 있는가. 그 선조는 ‘임나의 왕족이자 초발(草拔, 수로왕)의 성스러운 가지다’라고 했는데, 수로왕의 후손이면 왜 김이라는 성을 쓰지 않았는가. 또 수로왕을 초발(草拔)이라 불렀는가. 그 스님이 먼 조상 김유신의 직계라면 왜 김유신의 몇 대조 후손이라고 밝히지 않았는가…. 또 지난 6월 25일 자 <전남매일>을 통해 ‘초발은 처음 나타났다는 뜻을 가진 수로(首露)의 또 다른 한자 표기’라고 했는데, 초발(草拔)은 ‘풀(草)을 뽑다(拔)’라는 의미일 텐데 어떻게 ‘처음 나왔다’는 수로(首露)와 같은 뜻을 가질 수 있는가.

비문 첫 부분의 해석에서 벌써 이런 문제가 드러난다. 첫 단추가 이러한데 다음 구절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누가 반지성인지, 누가 역사 왜곡을 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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