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의 거장 아리 에스터 “한국 영화의 오랜 팬”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보 이즈 어프레이드’ 5일 개봉
27회 BIFAN 개막작 상영도
기억·환상·현실 뒤섞인 공포
“개성·유머…가장 나다운 작품”

“봉준호는 영웅, 이창동은 천재”
‘지구를 지켜라’ 리메이크 참여

아리 에스터 감독이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로 국내 극장가를 찾는다. 싸이더스 제공 아리 에스터 감독이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로 국내 극장가를 찾는다. 싸이더스 제공

“한국 영화의 오랜 팬이에요. 한국 감독과 그들의 작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죠.”

미국 감독 아리 에스터의 말이다.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BIFAN) 개막작이자 5일 극장에서 개봉한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들고 처음 내한한 그는 한국 관객과 만나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서울 광진구 화양동 한 카페에서 만난 아리 에스터 감독은 이번 신작을 “나의 개성과 유머가 고스란히 담긴 가장 나다운 작품”이라고 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데뷔작인 ‘유전’(2018)과 ‘미드소마’(2019) 두 편으로 세계적인 공포영화 거장으로 부상했다. 할리우드에서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를 이을 차세대 유대계 감독으로 꼽힌다. 에스터 감독은 한국 영화 마니아로도 소문나있다. 그는 지난달 27일 영화 시사 후 간담회에서 좋아하는 감독으로 이창동 감독부터 봉준호·박찬욱·장준환·나홍진·홍상수 등을 줄줄이 나열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달 29일 한 행사에선 “김기영 감독 작품들과 ‘오발탄’(1960)은 시대를 앞서간 영화”라며 한국영화 사랑을 보여줬다.

에스터 감독은 특히 봉준호 감독을 ‘나의 영웅’이라고 칭했다. 감독은 “봉 감독은 정말 훌륭한 감독”이라며 “내 작품을 좋아해 줬다는 말을 듣고 영광스러웠다”고 했다. 이창동 감독의 연출에 대해선 “천재적”이라고 극찬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문학적인 느낌이 들어요. 모두 최고로 뛰어난 감독들이죠. 영화 ‘박하사탕’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에스터 감독은 10여 년 전 썼던 시나리오를 다듬어 이번 작품을 만들었다. 에스터 감독이 미국영화연구소(AFI)에서 공부하던 시절 친구들과 찍은 단편영화를 토대로 했다. 영화는 주인공 ‘보’가 기억과 환상, 현실이 뒤섞인 공포를 경험하는 기이한 여정을 그린다.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 컷. 싸이더스 제공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 컷. 싸이더스 제공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 컷. 싸이더스 제공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스틸 컷. 싸이더스 제공

애스터 감독은 영화에서 가족을 공포의 근원으로 삼는다. 대개 할리우드 영화가 주로 따뜻하고 끈끈한 가족을 주로 그리는 것과는 다르다. 감독은 “미국 영화에서 묘사하는 전형적인 핵가족의 모습은 제가 아는 가족의 모습과 다른 것 같다”며 “가족은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요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의 좋은 면을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좀 지루할 것 같았다”며 “제가 인간으로서 성숙하면 그런 영화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그는 주인공 ‘보’가 자신을 많이 닮았다고 했다. 감독은 “보가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고 그 사이에서 계속 갈등하는 부분이나 그가 가진 죄책감이 나와 닮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 만든 작품 중에 가장 자기 검열을 적게 했다”면서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 영화는 방대한 유대계 농담”이라며 “궁극의 ‘유대인 어머니’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 신화, 구약성서, 프로이트 사상,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등에서도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에스터 감독은 “보는 그리스 비극, 구약 성서, 프로이트의 전형 같은 인물”이라며 “동시에 멜로 드라마틱한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리스 비극이나 테네시 윌리엄스 등에서도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감독은 “이번 영화에 카프카적 요소가 너무 많아 일일이 말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카프카는 삭막한 곳에서도 유머를 찾아내는 가장 웃기는 작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에스터 감독은 장준환 감독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제작에 참여한다. 그는 ‘지구를 지켜라’를 “많은 장르를 한 편의 영화로 집약시키기가 어려운데 그걸 잘 해낸 작품”으로 봤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고정된 형태를 이용해 자유롭게 표현하는 게 한국 영화의 매력이에요. 이 영화도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이라 제가 정말 좋아합니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