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병원 비정규직 방치가 의료 공백 불렀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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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노조 파업에 부산서만 혼란
정규직 전환 둘러싼 갈등이 불씨
14개 국립대 중 부산대만 ‘뒷짐’
노사 마찰 격화 사태 장기화 우려

보건의료노조 총파업을 하루 앞둔 12일 오후 부산 서구 부산대학교병원 입원실이 비어 있다. 부산대병원은 노조 총파업에 대비해 중증환자와 고위험 산모 등을 제외한 입원환자를 조기 퇴원시키거나 협력병원으로 전원시켰다. 정종회 기자 jjh@ 보건의료노조 총파업을 하루 앞둔 12일 오후 부산 서구 부산대학교병원 입원실이 비어 있다. 부산대병원은 노조 총파업에 대비해 중증환자와 고위험 산모 등을 제외한 입원환자를 조기 퇴원시키거나 협력병원으로 전원시켰다. 정종회 기자 jjh@

13일부터 시작되는 보건의료노조의 무기한 파업 여파로 부산·경남 지역의 의료 현장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부산대병원이 중환자와 감염환자 등을 제외하고는 퇴원 조치를 하면서 환자와 보호자들은 갈 곳을 찾지 못해 헤매는 실정이다. 특히 부산대병원 노조는 이번 산별총파업이 마무리되더라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파업을 이어가겠다고 밝혀,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둘러싼 부산대병원 노사의 기싸움으로 인해 애꿎은 시민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번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으로 인해 전국에서 부산대병원이 가장 큰 여파를 받고 있다. 부산대병원의 직원 수와 노조 규모가 큰 이유도 있지만, 이번 파업에는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가 모두 동참하기 때문이다. 보건노조 부산본부에 따르면 13일부터 시작하는 산별총파업에 파업권을 확보한 조합원 수는 8199명이다. 이 중 부산대병원(부산·양산) 지부가 약 4500명, 부산대병원 비정규직(부산미화·부산시설·부산주차·양산시설·양산보안) 지부가 약 500명이다. 보건노조는 응급실·중환자실 등 필수유지업무부서에 근무하는 조합원을 제외하면, 실제 5000여 명이 파업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중 부산대병원 참여자는 절반이 넘는 2500~3000여 명 규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대병원은 의사를 제외한 병원 대부분 인력이 파업에 동참해 입원 환자에 대한 치료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12일까지 입원 환자를 퇴원시키거나 전원조치했다. 중환자와 감염환자 등 전원이나 퇴원이 어려운 20~25% 환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퇴원을 마친 상태다.

이번 파업은 보건노조 부산본부 역사상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되는 만큼, 파업의 여파도 어느 때보다 클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대병원은 2019년에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였으나, 당시는 비정규직 지부 위주의 파업이라 의료 대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병동 간호사를 비롯해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등 대부분 직역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돼, 초유의 사태로 입원환자 퇴원조치까지 감행했다.

문제는 병원 노사가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시민의 생명을 볼모로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초래했다는 점이다. 특히 병원 측은 2017년부터 제기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방치(부산일보 2022년 12월 29일 자 1면 등 보도)해 갈등을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재 14개 국립대병원 중 부산대병원을 제외한 13개 병원 모두가 직접 고용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을 완료했다.

지난 3월 신임원장으로 취임한 정성운 부산대병원장은 부원장으로 병원장 직무대행을 할 때부터 노조와 마찰을 빚어왔고, 병원장 취임 후에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아 노조와의 갈등이 격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지역 한 의료계 관계자는 “병원 측이 비정규직 문제를 오래 방치한 것도 문제지만, 노조도 이 문제를 두고 파업을 이어가겠다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면서 “의료라는 공익성을 고려할 때, 시민의 생명을 담보로 노사 간 감정싸움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전날 수술을 받은 환자가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채 퇴원하거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는 등 환자들의 불편이 잇따랐다. 평소 지병으로 인해 부산대병원을 자주 찾는 박 모(64) 씨는 “부산대병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문제가 오래된 문제로 알고 있다. 노사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해결 못해서 시민들 생명과 건강까지 볼모로 해서야 되겠냐”며 비판했다.

파업 장기화에 대한 시민 불안도 따른다. 오는 20일 모친의 외래 진료가 예약돼있는 이 모(55) 씨는 “부산대병원이 파업 소식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어떡하나 불안했다. 병원에서는 20일이면 괜찮을 거라고 하는데, 파업이 길어질 수도 있다고 해서 걱정이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시도 의료 공백과 의료 현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 비상진료대책 상황실을 설치해 운영 중이나, 마땅히 중재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시 관계자는 “쟁의 신청에 따라 쟁의권을 확보한 파업인만큼, 시가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부산대병원에 협조를 요청하고, 인근 병원과 협력 병원에 외래진료 확대 등을 요청해 의료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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