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기분 좋은 도시, 기분 좋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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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
현대건축 거장들 작품 즐비
오랜 시간의 흔적 남은 공간
세대를 이어 즐기는 상징돼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것은 축구와 안토니 가우디이다. FC바르셀로나는 축구를 즐겨 보지 않는 사람들도 알 만큼 세계적인 축구 클럽이고, 안토니 가우디 또한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바르셀로나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이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바르셀로나의 건축물 일곱 개는 모두 안토니 가우디 작품이다. 인구가 160만 명인 바르셀로나에 한 해 관광객이 3000만 명 다녀간다고 하니, 가히 관광으로 도시가 먹고사는 듯하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가의 이름이 도시의 상징이 된 특별한 도시, 바르셀로나는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 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대학시절부터 책으로가 아닌 실제로 보고 싶었던 현대건축의 전시장인 이곳, 바르셀로나에 지금 와 있다. 대한건축학회 부울경지회(회장 이상진)가 마련하고 부산건축가회(회장 이봉두)가 참여하여 공동 기획한 스페인 건축문화 탐방으로 바르셀로나에 온 필자는 가우디가 남긴 ‘사그라다 파말리아 성당’ 앞에서 그의 작가정신과 예술혼, 그리고 그런 그를 길러 낸 바르셀로나가 부러웠다.


1882년부터 짓기 시작한 이 성당을 가우디가 맡게 된 건 1883년으로, 그가 사망할 때까지 동쪽만 지어졌다. 그가 지은 동쪽을 보고 나머지 서쪽을 후세가 짓고 있는데 아직도 완공되지 않았다. 입체기하학에 바탕을 둔 네오고딕식 건축양식의 가우디 시기와 후대의 시공과 설계의 조화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 변천이 흥미로웠다. 성당은 가우디 사후 100년에 맞춰 2026년에 완성할 예정이라고 한다. 바르셀로나 시 당국이나 시민이 완공에 필요한 자금력과 기술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천천히 시간을 가지며 공사를 진행하니 각기 시대와 상징, 공간을 달리하여 극적인 효과와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하나의 건축물이 시간과 공간별로 만든 스토리텔링은 관람자들이나 가톨릭 신도들에게 신비감과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3차원의 공간에 시간이 더해져 건축은 4차원이 된다. 건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느낌이 달라진다. 거기에다 개인의 체험이 더해지면 특별한 공간이 된다. 시간의 사용이 공간의 흔적으로 남을 때 건물은 건물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더불어 건축의 프로세스에 시민들을 참여시킨다면 그게 곧 스토리가 된다. 오래오래 짓는 건축물이 많은 이야기를 담아 역사가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여행자들이 가우디의 작품을 보기 위해 바르셀로나를 찾는 이유 중 하나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 한 사람만으로 기억되기에는 멋진 건축물이 너무 많다. 가우디의 영향인지, 독특하고 다양한 건축물을 받아들이는 데 거리낌 없는 바르셀로나인들 덕분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현대건축 거장들의 건축물을 마주할 수 있는 이곳은 기분 좋은 도시임에 틀림없다.

지난 6월 말, 발간된 인문 무크지 〈아크〉 6호 ‘기분’에서 차윤석(동아대) 교수는 “건축과 도시는 사람들이 ‘기분’ 좋게 걸을 만한 공간과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며 그것이 건축과 도시가 지켜야 할 미덕이자 의무라고 했다. 건축과 도시가 제대로 인식되고 이해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몇 세대에 걸쳐 지속되는 디자인과 양식이 필요한데 어느 정도 일관성을 가지고 디자인된 건축과 도시는 세월을 넘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필요조건을 충족한 셈이라며 현재의 세대가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건축과 도시는 다음 세대가 이해하고 즐기기 위한 기반이 된다고도 했다. ‘불특정 다수’, 즉 ‘공공’에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건축과 도시는 눈을 즐겁게 해 자연스레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유럽의 도시와는 달리, 부산은 압축된 도시화 과정을 겪었다. 피란 이후 만들어진 혼종문화는 다양성을 포용하고 항구, 포구, 산과 들, 305km의 해안선, 산복도로, 골목과 강 등 모든 자연을 품고 있는 매력적인 풍경을 갖고 있다.

강동진(경성대) 교수는 〈아크〉 6호 ‘기분’에서 ‘부산’ 하면 해양, 영화, 물류업, 수산업, 근대 역사, 컨벤션 등이 떠오르지만 그 어느 것도 국제사회에서 강력한 마케팅 파워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들을 부산 풍경이라는 대주제 아래 집중시켜 다시 엮어 내야 한다고, 섬세하면 섬세할수록 느리면 느릴수록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생각하면 기분 좋아지는 도시, 방문하면 기분이 더 좋은 도시, 세월을 넘어 오래 지속되는 부산을 위해 남기고 채울 것들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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