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시대와 예술, 예술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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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퍼루크 가발에 퀼로트 차림으로활동한 하이든. 퍼루크 가발에 퀼로트 차림으로활동한 하이든.

복식 스타일은 특정 계급의 욕망을 담지하면서도 시대정신과 길항한다. 절대왕정시대 프랑스의 귀족 남성은 품을 넉넉하게 부풀린 반바지 퀼로트(culottes)를 입었다. 여기에 스타킹과 뾰족구두를 더하면 계급적 정체성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상퀼로트(Sans-culottes)는 퀼로트를 입지 못하는 하층계급의 남성을 낮잡아 일컫는 말이었다. 프랑스대혁명 시기 파리의 하층민 상퀼로트는 혁명의 주역이 되었다. 구체제를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지롱드당을 몰아내고 혁명정부를 수립한 자코뱅당의 중심세력이 바로 상퀼로트였다. 역사학자 린 헌트는 상퀼로트를 단순한 복장(服裝)이 아니라 혁명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읽었다.

하이든은 퍼루크(peruke) 가발에 퀼로트 차림으로 활동했다. 40년간 에스테르하지 궁정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가문의 체면 유지를 위해 마부와 집사도 퀼로트와 가발을 착용하도록 했다. 그는 궁정사회의 질서에 순응하며 평온한 삶을 누렸던 예술가였다. 하이든보다 20년 늦게 태어난 모차르트는 산업혁명과 프랑스대혁명 시기를 살았다. 하이든과 동시대를 살았지만 음악적 삶이 사뭇 달랐다. 퀼로트와 퍼루크 차림으로 귀족사회의 욕망을 충족하는가 하면, ‘피가로의 결혼’처럼 세태를 비판하는 음악을 내놓기도 했다. 궁정사회의 질서에 좀체 녹아들지 못했던 까닭에 삶은 곤궁했다. 그가 품었던 자유 예술가의 꿈은 시대와 불화하며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상퀼로트 차림으로 활동한 음악가는 베토벤이다. 가발도 쓰지 않았다. 그가 음악적 소신을 관철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했던 시대적 분위기와 관련 있다. 출판산업과 더불어 예약 연주회가 활성화되면서 악보 출판이나 작품 발표를 통해 일정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성숙한 시민사회의 기풍 속에서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음악세계를 열어나갔다. 노베르트 엘리아스가 모차르트를 ‘궁정사회의 시민 음악가’라 규정했다면, 하이든은 ‘궁정사회의 궁정 음악가’였으며, 베토벤은 ‘시민사회의 시민 음악가’라 할 수 있다.

퀼로트와 퍼루크는 프랑스대혁명 이후 단두대의 이슬처럼 사라졌다. 구체제 지배계급의 신분과 권위를 상징하던 복식 스타일의 폐기는 혁명이 촉발한 새로운 시대정신과 정치성의 표현이었다. 문화는 정치, 경제, 사회의 종속물이 아니라 현실정치를 조직하고 변화시키는 힘이다. 오늘날 여전히 궁정 예술가의 정체성에 머물러 있는 예술가의 행태나 그러한 예술가의 역할을 요구하는 문화행정의 민낯을 종종 목도하게 된다. 시대와의 불화를 감내하며 새로운 시대정신을 구가했던 예술의 윤리학은 혁명처럼 몰락하고 말았는가. 이 시대의 예술은 어떤 복식을 걸치고 무슨 말을 건네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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