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지금은 인류세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우리는 이제 홀로세가 아니라 인류세에 살고 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네덜란드 대기화학자 파울 크루첸은 2000년 현세인 홀로세를 끝내고 인류가 만든 새로운 지질시대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과도한 온실가스 배출 등 인간 활동으로 지구의 물리화학적 시스템이 안정적 상태를 벗어나 새로운 지질시대에 들어섰다는 주장이었다. 자연환경의 지배를 받던 인간이 산업혁명과 핵무기 개발을 통해 지구환경의 지배자로 등장하면서 지층의 역사를 바꾸고 있다는 의미를 담아 인류세라 이름했다.

지질학자들은 46억 년 지구 역사를 크게 다세포생물이 번성한 선캄브리아대, 최초 육상 생물이 출현한 고생대, 공룡 등 파충류가 번성한 중생대, 포유류가 번성한 신생대로 구분한다. 대는 다시 기-세-절로 세분된다. 중생대에서 백악기와 쥐라기로 나뉘고 신생대가 3기와 4기로 구분되는 식이다. 지금 인류는 신생대 4기 중에서도 1만 1700년 전 플라이스토세 빙하기가 끝난 이후의 홀로세에 살고 있다.

인류세 제안은 전 지구적 기후변화와 함께 점차 학계의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국제지질학연합(IUGS)은 2009년 산하에 인류세 워킹 그룹(AWG)을 꾸리고 인류세 공식화를 위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AWG가 11일(현지 시간) 인류세를 대표할 지층인 ‘국제표준층서구역’으로 캐나다 크로퍼드 호수를 선정, 발표한 것도 그 연구의 결과물이다. 토론토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한 이 호수는 축구장 두어 개 크기(2.4ha)로 작지만 수심은 24m로 깊다. 동물 활동의 방해 없이 윗물과 아랫물이 잘 섞이지 않아 호수 밑바닥에 나이테처럼 지구 역사를 차곡차곡 기록한 것으로 평가됐다.

AWG는 인류세 지질시대를 제4기층서위원회와 국제층서위원회에 차례로 상정해 투표에 부칠 예정인데 표결을 통과하면 내년 8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37차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최종적으로 비준받는다. 인류세 첫 절 이름은 표준지에서 따오는 만큼 인류는 이제 신생대 4기 인류세 크로퍼드절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인류세 시작은 인류 첫 핵실험 이후인 1950년으로 학자들의 의견이 모인 상태다. 문제는 각 지질시대를 구분하는 중대한 계기를 상징하는 골든 스파이크(황금 못)가 있는데 후보군으로 닭 뼈, 플라스틱, 플루토늄 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불행히도 인류세는 인간에 의한 지구 파괴라는 낯부끄러운 역사의 시작이 될 전망이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