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공공기관 이전 '투 톱'의 헛발질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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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정치부장

올 상반기 계획 발표 돌연 연기
‘경쟁’ ‘총선’…이유도 납득 안돼
전 정부 ‘희망 고문 시즌2’ 우려
‘국가 미래 위한 일’ 의지 보여야

정부가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 기본계획 발표를 연기하겠다고 공식화했다. 대상 공공기관이 300개가 넘는 만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갈등 요소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니 십분 양보해서 더 면밀한 검토를 위한 연기 결정이라고 아직은 이해해보려 한다. 우려스러운 점은 문제를 대하는 정부의 자세와 대처 방식이다.

공공기관 이전 연기 사실을 주무부처 수장 두 명이 은근슬쩍 흘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공기관 이전 ‘투 톱’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우동기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이 짠 듯이 총대를 멨다. 지난달 29일 국회 상임위에 출석한 원 장관이 “시간이 필요하다”며 바람을 잡았다. 뒤이어 우 위원장이 기자들을 모아놓고 ‘갈등 때문에 합리적 결정을 못하니 총선 뒤로 미루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국민 앞에 ‘2023년 하반기 공공기관 이전’을 공언한 지 수개월 만에 뒤집는데 말 몇 마디가 전부였다.


불안과 걱정은 지난해 연말부터 똬리를 틀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 당시 우 위원장은 이르면 2023년 하반기에 공공기관이 이전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국토부도 올 초 대통령 업무보고 때 ‘6월까지 공공기관 이전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보조를 맞췄다. 그땐 우 위원장과 원 장관의 ‘콤비 플레이’에 ‘6개월도 안 걸려 답을 낼 수 있는 문제냐’는 의구심을 애써 외면했다고 할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부 검토와 지자체·공공기관과의 협의 과정이 있었을 것으로 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연기 사실 공개 방식은 서툴렀고 성급했다.

공공기관 이전은 수십 년 진행된 국토 불균형 문제를 풀자며 제시된 해법이다. 정답이 될지 누구도 장담 못하지만 현재로선 한국의 유일한 선택지다. 지방과 수도권이 맞서야 하고 지방 간 경쟁도 예고돼 있다. 아니,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전국 지자체가 신청한 희망 공공기관 수를 더하니 400개가 넘었다. 혁신도시가 있는 지자체는 혁신도시 부흥책을 요구하고, 비혁신도시 지자체는 혁신도시 탓에 피해를 봤으니 공공기관을 달라고 맞선다. 공공기관의 불안과 반대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정부가 수시로 굳은 의지를 보이고, 강한 추진력으로 밀어붙여도 될까 말까다. 과정도 신중해야 한다는 점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전반적인 실무를 이끌 두 책임자가 초반부터 말을 번복하니 온 나라가 불안해한다. 불가피하게 연기를 결정했다면 최소한 국민의 이해를 구했어야 한다. “지자체 유치 경쟁 때문”이라는 원 장관 핑계는 구차하다. 수백 개 공공기관을 재배치한다는데 작은 소도시들도 기회를 잡으려 하지 않겠나. 촉박하게 시한을 잡은 일부터 실책이었음을 자인한 꼴이다.

지방시대위 출범을 전후해 연기가 결정된 일도 답답하다. 지방시대 실현을 이끌 실무기구가 출범 시점에 희망의 메시지를 내기는커녕 이전 연기를 확정한 모양새다. 더구나 위원장이 나서서 총선과 결부시켜선 안 됐다.

이 이슈가 총선과 연결되니 지방에서는 전 정부 때 ‘희망 고문’을 떠올리게 된다. 윤 대통령이 지방시대를 천명했듯이 문재인 전 대통령도 취임 전부터 “노무현 정부보다 더 강력하게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장담했다. 당시 여당 대표이던 이해찬 대표가 2018년 9월 국회에서 공공기관 이전을 약속했을 때 지방은 환호했다. 그는 2020년 총선 직전 부산을 찾아 총선 후 이전을 장담하며 표몰이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총선 승리 후 공공기관 이전 문제에 입을 닫다시피했다. 정권 말기엔 ‘다음 정부에 넘겨줄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는 하나마나 한 발언도 나왔다. ‘총선 후 추진’ 발언을 못 믿는 것은 이런 전례 때문인데, 현 정부에서도 공공기관 이전을 이끌 두 인물이 판박이 행보를 보인 것이다.

정치 셈법으로도 계산해 보자. 총선 후 추진 결정은 만약 여당이 총선에 패배하면 공공기관 이전은 어렵다는 협박으로 읽힐 소지도 있다. 공공기관 이전은 법률 뒷받침도 필요하니 여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추진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여든, 야든 내년 총선 승리가 최우선 목표인 점을 모르지 않는다. 굳이 걸림돌을 만들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공기관 이전은 국가 미래를 위한 핵심 과제로 정치와 무관하게 추진돼야 한다. 정쟁으로 허비할 시간이 없다는 건 다 잘 알지 않나. 여전히 윤 대통령의 지방시대 의지는 굳건할 것으로 믿는다. 이 시점에 윤 대통령이 다시 한 번 의지를 표명한다면 지방은 답답함을 추스르며 다시 인내를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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