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농지 침수·흑해곡물협정 파행, 밥상물가 심상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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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등 비상에도 정부 대응은 느긋
긴 안목으로 근원 대책 마련해야

한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이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집중호우에 따른 농축산물 수급 영향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한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이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집중호우에 따른 농축산물 수급 영향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진정 기미를 보이던 밥상물가에 다시 비상등이 켜졌다. 극한 호우로 인해 농축산물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초만 하더라도 정부는 물가관리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실제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6월 전년 동월 대비 2.7%에 그치며 안정세를 보였다. 하지만 연일 이어진 폭우로 상황이 급변했다. 작물이 침수되고 가축이 폐사하면서 농축산물 가격이 폭등할 조짐을 보인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연장 거부 소식까지 전해지며 세계 곡물가격도 꿈틀거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로 인해 고통받는 서민들은 더욱 가슴을 졸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됐다.

지난주부터 계속된 폭우로 침수된 농경지가 서울 여의도 면적의 110배를 넘었다. 축사도 온전하지 못했다. 공급량이 급감하니 농축산물 가격이 오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상추나 시금치 등 채소류가 도매가격으로만 1주일 새 50~200% 정도 올랐다. 배추는 값을 따지기 전에 아예 품절이 우려될 정도로 공급량이 줄었다고 한다. 채소류에 비해 아직은 덜하다고는 하지만 닭고기나 돼지고기 같은 육류도 가격이 대폭 오를 태세다. 이번 폭우로 폐사한 가축이 적어도 80만 마리는 넘을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이런 식재료 가격 상승세는 향후 장마가 끝나더라도 계속돼 한동안 밥상물가에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는 한 해 3300만 톤의 밀과 옥수수 등 곡물을 흑해를 통해 세계 각지로 수출해 왔다.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연장 거부는 이런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이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곡물 자체 가격만이 아니라 빵이나 면 등 식품가격도 연쇄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 지난해의 경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곡물시장이 요동쳤고, 그에 따라 국내 식품 가격도 급등했다. 우려는 벌써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의 협정 연장 거부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밀을 비롯한 곡물들의 선물 가격이 일제히 상승했다. 그 여파가 국내에 이를 시기는 그리 머지않아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훈 차관 주재로 ‘집중호우에 따른 농축산물 수급 영향 점검회의’를 열었다. 밥상물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라고는 하지만, 사안의 중대함에 비춰 정부의 태도가 지나치게 느긋하다는 느낌이다.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이 대체품목 출하 확대, 비축분 방출 등에 그쳤기 때문이다. 폭우나 폭염 같은 이상기후의 일상화로 농산물 가격의 변동성은 해마다 더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도 언제 종결될지 알 수 없다. 보다 긴 안목으로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근원적인 물가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한가하게 점검회의 정도에 그칠 게 아니라 물가 안정을 위해 가진 힘과 지혜를 모두 짜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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