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10년에 걸쳐 완성된 릴케 필생의 역작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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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이노의 비가/릴케

<두이노 비가>. 민음사 제공 <두이노 비가>. 민음사 제공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는 시인 중의 시인으로 꼽힌다. <두이노 비가>는 10편 연작으로 이뤄진 릴케 필생의 역작이다. 릴케는 이탈이아 두이노성에 머물 때 제1비가를 쓰기 시작했고, 10년에 걸쳐 10편의 비가를 완성했다. 10편을 묶어 <두이노 비가>를 처음 출간한 것이 1923년이다. 이 책은 초판본 출간 100주년을 기념해 나온 것이다.

아드리아해 옆의 두이노성에 머물 때 바람결에 들려온 소리가 제1비가의 앞 구절이다. ‘내가 울부짖은들, 천사의 위계에서 대체/누가 내 목소리를 들어줄까? 한 천사가 와락/나를 가슴에 끌어안으면, 나보다 강한 그의/존재로 말미암아 나 스러지고 말 텐데. 아름다움이란/우리가 간신히 견디어 내는 무서움의 시작일 뿐이므로’.

시인은 말할 수 없는 것을 갈망하면서 바람처럼 불어오는 신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그 신을 릴케는 ‘천사’라고 표현했다(김춘수 시에 나오는 천사가 릴케의 그 천사다). 천사의 소리가 시인이 얻어낸 말, 즉 시라는 것이 릴케의 생각이다.

두이노 비가는 삶과 죽음, 사랑과 고통, 실존의 고독과 불안, 예술과 시인의 임무 등을 탐구한다. ‘모든 존재는 한 번뿐, 단 한 번뿐, 한 번뿐, 더 이상은 없다’. 그 한 번 속에 우리는 무엇을 하나. ‘어쩌면 우리는 말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다. 집, 다리, 샘 (중략) 오 이것들을 말하기 위해, 사물들 스스로도 한 번도 진정으로 표현해 보지 못한 방식으로’.

릴케는 죽음은 삶의 종말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적 바탕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제10 비가에서 노래하고 있다. <두이노 비가>는 삶에 대한 찬가로 마무리된다. 릴케 지음/김재혁 옮김/민음사/312쪽/1만 5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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