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바이아웃 조항의 묘미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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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용 스포츠라이프부 에디터

프로축구서 통용되는 최소 이적료 규정
명시한 금액 지불 땐 자유로운 이적 가능
김민재·이강인, 뮌헨·PSG 입단 때 적용
선수에게 이롭지만 구단 재정에도 도움

프로축구의 여름 이적시장이 문을 닫았다. 한국 선수들에겐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여름이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간판 스타 김민재, 이강인이 유럽 빅클럽으로 이적했고, 김지수, 조규성, 권혁규, 양현준 등 젊은 유망주들은 대거 유럽 무대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야말로 연쇄 대이동이었다.

‘철기둥’ 김민재는 국내 팬들 사이에서 ‘레바뮌’(가장 뛰어난 전력을 갖춘 레알 마드리드·FC바르셀로나·바이에른 뮌헨 세 클럽을 일컫는 말)으로 불리는 그 팀 독일 분데스리가의 절대 1강 바이에른 뮌헨의 붉은 유니폼을 입었다. 바이아웃 5000만 유로(약 710억 원)에 연봉은 1200만 유로(약 171억 원)로 알려졌다.

‘골든보이’ 이강인 역시 프랑스 리그1의 지존 파리 생제르맹(PSG)에 새 둥지를 틀었다. 바이아웃 2200만 유로(약 314억 원), 연봉은 400만 유로(약 57억 원)로 전해진다.

‘제2의 김민재’ 김지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브렌트퍼드FC에 입단했고, 대표팀 스트라이커 조규성은 덴마크 FC미트윌란에서 이미 데뷔골까지 넣었다. 권혁규와 양현준은 셀틱FC의 부름을 받아 오현규와 함께 스코틀랜드 무대를 누빌 예정이다.

잇단 유럽파의 탄생과 이적 상황을 접하며 눈길을 끈 건 ‘바이아웃 조항’이다. 바이아웃(buy-out)은 선수가 다른 구단으로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도록 원 소속 구단에 지급하는 최소 이적료로, 계약서상에 이를 정해 놓은 규정이 바이아웃 조항이다. 프로축구 시장에서 꽤 활성화된 계약 규정이다.

프로야구에선 자유계약(FA) 신분을 획득해야 자유로운 이적이 가능하지만, 프로축구에선 계약기간이 만료되지 않아도 바이아웃이 발동되고 그 금액을 지불할 구단이 나온다면 선수 의사에 따라 팀을 옮길 수 있다.

지난해 여름 이탈리아 세리에A SSC나폴리로 이적한 김민재는 당시 계약서에 5000만 유로의 바이아웃 조항을 넣어 뒀는데, 이번에 그 효력을 본 것이다. 뮌헨이 5000만 유로의 이적료를 지불할 뜻을 나타낸 뒤 뮌헨과 김민재 간 계약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나폴리는 김민재를 붙잡고 싶어도 강제할 수 없었다. PSG로 이적한 이강인도 마찬가지다.

K리그2의 성남FC가 19세의 젊은 유망주 김지수를 쉽게 풀어준 것도 바이아웃 조항 때문이다. 김지수는 어린 나이에도 70만 달러(약 9억 원)의 바이아웃 조항을 달았고, 브렌트퍼드가 이를 지급하면서 유럽 무대를 밟게 됐다.

바이아웃 조항을 명시하면 이적의 결정권을 선수가 확보할 수 있다. 반면 바이아웃 조항이 없다면? 이적 주도권은 구단이 쥐게 된다.

덴마크 미트윌란 유니폼을 입은 조규성은 지난 겨울 이적할 기회가 있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가나전에서 멀티골을 터트리며 일약 스타로 떠오른 조규성은 월드컵 직후 독일 마인츠05의 입단 제의를 받았지만, 바이아웃 조항이 없어 전북 현대 구단의 뜻을 무시할 수 없었다.

셀틱으로 동반 진출하는 권혁규와 양현준도 바이아웃 조항이 없어 지난 시즌 해외 구단의 이적 제안이 무산된 바 있다. 이번에 셀틱행이 성사된 건 구단의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축구 관계자에 따르면 사실 구단 측에선 바이아웃 조항을 반기지 않는다. 다만 실력이 출중하고 꼭 잡아야 할 선수일 경우 선수의 뜻에 따라 바이아웃 조항을 삽입한다. 더 큰 무대를 꿈꾸는 선수들은 바이아웃 조항을 확보하기 위해 연봉을 줄이는 손해를 감수하기도 한다. 바이아웃 조항이 의무화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경우 비니시우스(레알 마드리드) 같은 대형 스타를 타 구단이 아예 넘보지 못하도록 10억 유로(1조 4334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바이아웃을 걸기도 한다.

그렇다고 바이아웃 조항이 구단에게 마냥 불리한 건 아니다. 어차피 좋은 선수들은 떠날 것이고, 계약기간 만료 전에 이적료라도 챙기는 게 구단 재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1년 전 1800만 유로(약 259억 원)의 바이아웃 금액을 페네르바체에 지불하고 김민재를 영입한 나폴리는 2.5배 이상 남겨 먹는 수지 맞는 장사(?)를 했다. 다만 나폴리로선 김민재가 단 1년 만에 세리에A 최고 수비수가 될 진 몰랐을 것이다. 당시엔 5000만 유로가 적지 않은 바이아웃으로 생각됐는데, 지금은 오히려 낮은 수준의 바이아웃 액수로 드러나고 말았다.

이강인의 전 소속팀 RCD마요르카는 엄청난 대박을 쳤다. 이적료 한 푼 없이 이강인을 데려와 2200만 유로나 벌어들였다. 유소년 시절부터 이강인을 키워 자유계약으로 풀어준 이전 소속팀 발렌시아CF만 배가 아플 뿐이다.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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