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년 만의 조선통신사 항해 앞두고 열린 영가대 ‘해신제’ [2023 조선통신사]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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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문화재단 28일 무사 안녕 기원
새 조선통신사선으론 첫 국제 항해
본 항해 앞서 29일 출항 세리머니도

28일 오후 부산 동구 영가대에서 열린 조선통신사선 13차 항해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해신제에서 3헌관이 절을 올리고 있다. 부산문화재단 제공 28일 오후 부산 동구 영가대에서 열린 조선통신사선 13차 항해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해신제에서 3헌관이 절을 올리고 있다. 부산문화재단 제공

“해신(海神·바다신)이시여! 조심조심 갓난아기를 보살피듯 바람이 그치게 해 주시고 양국의 관계에서 순하고 이로운 바람만 불게 하옵고 이번 13차 조선통신사 항해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이에 조촐한 제물로 정성을 다해 조선통신사를 통한 한국과 일본의 앞날에 평화로운 나날을 기원하옵니다.”

28일 오후 8시께 부산 동구 자성로 영가대. 형형색색의 불을 밝힌 영가대 제단 앞에 무릎을 꿇은 초헌관(첫 번째 잔을 올리는 일을 맡아보던 제관)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축문을 읽는 목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28일 오후 부산 동구 영가대에서 해신제가 재현되고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28일 오후 부산 동구 영가대에서 해신제가 재현되고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영가대 해신제는 임진왜란 이후 1607년부터 200년간 한국과 일본을 왕래하며 선린우호의 정신을 내보였던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바다 용왕께 뱃길의 무사 항해를 빌었던 제례로 이날 행사는 부산문화재단이 주관했다. 이 자리엔 김진홍 동구청장, 강남주·남송우 전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 박화진 조선통신사 학회장, 범어사 성보박물관 환응 스님 등이 참석했다.

해신제 봉행은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시절이던 2006년 처음으로 복원한 이래 여러 차례 가졌지만, 올해만큼은 분위기가 남달랐다. 1811년 12차 사행 이후 212년간 멈췄던 조선통신사선의 ‘13차 항해’를 앞두고 열린 뜻깊은 해신제였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해신제였다.

2018년 재현한 조선통신사선. 부산문화재단 제공 2018년 재현한 조선통신사선. 부산문화재단 제공
28일 오후 부산 동구 영가대에서 해신제가 열리고 있다. 오른쪽 제단에는 수차례의 고증과 감수를 거쳐 정성껏 마련한 제수가 진설됐다. 부산문화재단 제공 28일 오후 부산 동구 영가대에서 해신제가 열리고 있다. 오른쪽 제단에는 수차례의 고증과 감수를 거쳐 정성껏 마련한 제수가 진설됐다. 부산문화재단 제공
28일 영가대 해신제에 진설된 음식들. 김은영 선임기자 28일 영가대 해신제에 진설된 음식들. 김은영 선임기자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2018년 조선통신사선을 복원(재현선)했지만, 실제로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으로 들어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통신사선은 8월 1일에서 4일 사이에 기상 여건에 맞추어 부산항을 출항해 2일간 항해한다. 하루 5시간씩 동력과 전통 돛으로 항해하며, 첫날 쓰시마 히타카쓰 국제항에 입항해 입국 심사 후 묘박한 뒤 다음 날 이즈하라항에 입항할 예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례 참여자뿐 아니라 음식 등에도 신경 쓴 인상이 역력했다. 초헌관이 들려주는 축문 글귀 하나도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2023년 7월 28일 통신사 초헌관 정재정, 아헌관 김슬옹, 종헌관 김형태는 감히 해신께 고하나이다…(중략) 오늘 저희는 나라로부터 통신사의 명을 받아 이웃 나라 일본과 평화외교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문화 교류를 통해 양국 관계를 회복하고자 평화 교류의 상징인 조선통신사가 되고자 합니다.”

28일 부산 동구 영가대에서 열린 해신제에서 조선통신사 13차 항해에 나서는 승선자들과 부산문화재단 관계자들이 무사 항해를 기원하는 절을 하고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28일 부산 동구 영가대에서 열린 해신제에서 조선통신사 13차 항해에 나서는 승선자들과 부산문화재단 관계자들이 무사 항해를 기원하는 절을 하고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현재 일정대로라면 8월 1일 9명(선장 기관장 항해사 학예연구사 부산문화재단 관계자 등)을 태운 조선통신사선이 부산항을 출발해 당일 오후 쓰시마 히타카쓰항까지 71km를 항해(4시간 50분 소요 예정)하고, 다음 날 60km를 더 가(4시간 소요 예정) 최종 목적지인 이즈하라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최대 승선 인원은 69명이지만, 이번엔 최대 12인 이내로 국제항해 임시 허가를 받았다. 실제 승선 인원은 9명이다. 이들도 해신제에 참석했다.

해신제 역시 통상 조선통신사 축제가 열리던 5월에 봉행해 왔지만, 올해는 조선통신사선 13차 항해 시기로 맞췄다. 해가 지고 난 뒤 개제한 해신제는 의복을 갖춰 입은 제관(연극배우)들이 여러 차례의 고증과 감수를 거쳐 정성껏 마련한 제수를 진설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해신제 제수 준비는 문화요리학원 이경희 원장이 맡았다. 이 원장은 2019년 조선통신사 해신제 음식 연구의 성과를 인정받아 부산시 최고 장인(요리 직종)으로 선정된 바 있다.

28일 해신제가 끝나고 제수 준비를 맡았던 문화요리학원 이경희 원장이 일반 시민들에게 해신제 음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28일 해신제가 끝나고 제수 준비를 맡았던 문화요리학원 이경희 원장이 일반 시민들에게 해신제 음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알자(빈객을 안내하거나 국가 대제 때에 제관을 인도하는 일을 맡아 하는 사람)가 초헌관을 비롯한 아헌관(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일을 맡아보던 제관)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 종헌관(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일을 맡아보던 제관) 김형태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등 3헌관을 안내해 입장했다.

이들은 각자 맡은 바 임무에 따라 제단 진설을 살피고 법도에 맞게 잘 차려졌는지 살펴보는가 하면, 축문을 읽는 등 초헌례·아헌례·종헌례를 차례로 이행했다. 그리고 제를 올렸던 술과 고기로 음복을 하고(음복수조례), 상 위에 올렸던 제기와 음식을 거두어 내렸으며(‘변’과 ‘두’ 거두기), 마지막으로 신위를 불사르며 해신제의 끝남을 알리는 망요례로 이어 갔다.

28일 영가대 해신제가 끝나고 참여한 3헌관과 제관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28일 영가대 해신제가 끝나고 참여한 3헌관과 제관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전폐례(해신제 준비를 마감하는 최종 단계)로부터 망요례까지 걸린 시간은 40분 남짓으로 참석 내외빈과 일반 시민 등 50여 명은 실제 제사에 함께하듯 숙연한 마음가짐으로 함께했다. 특히 실제 항해에 나서는 9명과 부산문화재단 이미연 대표이사 등 관계자들은 맨 마지막에 영가대 제단으로 나아가 술을 올리고 다 함께 절을 올렸다. 그리고 사슴고기로 만든 육포와 술, 전 등으로 뒤풀이를 가졌다.

28일 영가대 해신제를 끝낸 3헌관이 알자의 안내에 따라 영가대를 내려오고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28일 영가대 해신제를 끝낸 3헌관이 알자의 안내에 따라 영가대를 내려오고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한편 조선통신사선 13차 항해를 본격적으로 알리는 출항 세리머니는 29일 오후 3시 부산 남구 용호별빛공원에서 열린다. 이어 8월 5일과 6일 이틀간 펼쳐지는 이즈하라항 축제에서는 조선통신사선을 활용한 선상 박물관과 선상 문화 공연, 조선통신사 행렬 참여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쓰시마 시민을 비롯한 국내외 관람객들과 만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부산에서는 부산태극취타대, 춤패 배김새, 부산문화재단 관계자 등 50여 명이 쓰시마를 방문한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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