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총' 대신 '메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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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와 얽힌 인연이 있다. 식물학·고고학 분야에서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지닌 구스타프 6세 아돌프 국왕이 주인공이다. 1926년 황태자 신분으로 조선의 경주시를 방문해 서봉총(瑞鳳塚) 발굴을 참관하다가 두 달간 텐트를 치고 체류하면서 당시로선 획기적인 금관과 금팔찌, 금혁대 등을 발굴해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고분 이름도 스웨덴의 한자 표기 ‘서전(瑞典)’의 ‘서’와 고분에서 발견된 금관 봉황 장식의 ‘봉’을 딴 것이다. 그는 고려자기를 특별히 사랑해 “서양과는 다른 차원의 예술적 경지”라며 예찬한 인물이기도 하다.

6·25 전쟁 발발 당시 의료지원단의 한국 파견을 최초로 결정한 나라도 스웨덴이다. 9월 23일 부산항에 첫발을 디딘 선발대는 이틀 뒤 지금의 서면 롯데백화점 부지인 옛 부산상고 땅에 야전병원을 세워 생명이 위독한 부상병의 치료에 헌신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뒤에는 병원 명칭을 부산스웨덴병원으로 바꾸고 민간인 구호에 주력했다. 당시 불렸던 이름이 바로 ‘서전병원’이다. 1957년 4월 한국을 떠날 때까지 의사·간호사·위생병·봉사자로 일했던 이가 1120명, 군인·민간인 등 치료받은 이가 200만 명에 달한다. 현재 롯데백화점 정문 오른쪽에 세워져 있는 ‘스웨덴 참전 기념비’가 그 묵묵한 증언이다.

덴마크는 부산 앞바다에 병원선 ‘유틀란디아호’를 띄운 나라로 기억된다. 병원선은 1951년부터 1958년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파견돼 의료 지원 활동을 수행했다. 주로 후송 병원의 역할을 했지만 때로는 피격 위험을 무릅쓰고 전방의 항구로 나아가기도 했다. 당시 의료지원국은 스웨덴·덴마크 외에도 노르웨이·인도·이탈리아·서독(독일)까지 포함해 6개국에 달했다. 영도 태종대 입구 언덕에 이들 나라의 숭고한 활동을 기리는 ‘유엔 의료지원단 참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올해 정전협정 70주년을 계기로 의료지원국 용사들이 당시 부산에서 촬영한 사진 일부가 최근에 공개됐다. 유엔평화기념관이 그동안 참전 용사와 유가족들로부터 소장품들을 수집해 온 결과물이다. 정전 직후 부산을 비롯해 대한민국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인데, 올해 말 특별기획전에서 모두 공개된다고 한다. 머나먼 이국땅을 찾아 총 대신 메스를 들고 고군분투한 이들의 인류애는 바다만큼 깊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발현된 그 인도주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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