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심판'은 대체 어디 있나요?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권상국 경제부 산업팀장

서이초 이어 교육 현장 달군 주호민 논란
교권 추락하는데 학교 관리자는 어디에
공사 멈춘 북항 오페라하우스도 마찬가지
2년간 시 건설본부장 수 차례 바뀌도록
중재 외면하다가 결국 감사서 지적 당해

아내가 특수교사입니다. 연애하던 시절 ‘학생에게 맞았어’라며 내민 멍 자국에 충격 받은 기억이 납니다. 결혼 후에는 휴일에도 걸려 오는 무례한 학부모 민원 전화에 도리어 제가 화를 낸 적도 많았고요.

원체 씩씩한 사람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겨 왔습니다. 주말 내내 쏟아진 웹툰 작가 주호민 씨 부부의 뉴스를 보며 아내가 그간 혼자서 분을 삭여냈을 걸 생각하니 너무 미안합니다.

주호민 씨는 13년 전 한 차례 인터뷰를 한 인연이 있습니다. 인기작가 대열에 합류한 주 씨였지만 예의 바르고 다정다감했던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주 씨 부부의 갑질 논란은 그래서 더 충격이었습니다.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였지만 저도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까지 엉망은 아니었을 텐데요.


주 씨 부부를 변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주말 아침 아내와 제가 주 씨 부부의 행보보다 더 공분한 건 ‘심판’의 부재입니다. 교사가 직접 가해 학부모에게 합의를 부탁하고, 고소 당해 경찰 조사를 받고, 탄원서까지 모았습니다. 교권이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교육청과 학교 관리자가 등장하는 대목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교사와 학부모는 민원에 있어서 대척점에 있을 수밖에 없는 ‘선수’입니다. 선수가 다른 선수를 위력으로 벼랑 끝으로 몰아넣을 동안 ‘심판’이 없었던 겁니다.

지난주 금요일 다녀온 북항 오페라하우스 건설 현장이 떠오릅니다. 오페라하우스는 건축물 전반부에 적용할 파사드 공법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책임 소재를 놓고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5년 전 시작한 공사가 여전히 공정률 40%에 머물러 있는 이유입니다.

최근 부산시는 ‘오페라하우스 건립 사업에 대해 특정 감사를 벌여 12건의 위법·부당행위를 적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애초에 오페라하우스 공사가 좌초된 근원적인 책임은 발주청인 부산시에 있습니다. 설계 공모에서 제출된 설계에 제대로 된 기술적 검토를 하지 않으니까요. 이후 ‘이 설계도로는 공사를 못 한다’는 시공사도 어깃장을 놓았고 봉합은커녕 갈등만 커졌습니다. 현장에서 ‘선수’끼리 충돌했는데 ‘심판’ 부산시는 2년 넘도록 그 역할을 방기했습니다.

수년 전 모진 제자를 만난 아내는 노이로제에 시달렸습니다. 한 학기 내내 꼬집히고 발로 차이고 급기야는 뺨까지 맞았더랍니다. 남편이 알면 걱정할까 봐 몰래 교권보호위원회까지 신청했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 교권보호위원회는 끝내 열리지 못했습니다. 동료 교사 한 사람이 다가와 ‘철회하면 안 되겠느냐’는 말을 조심스럽게 전하더랍니다. 학교 관리자들의 의중을 알아챈 아내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산시 건설본부도 2년 동안 관리자 격인 본부장이 여러 차례 바뀌었습니다. 모두 오페라하우스 설계 문제로 불거진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빈축을 산 건 부산시가 검증위원회를 가동하니 그제서야 전문가라는 핑계로 본부장 출신이 3명이나 위원으로 들어앉았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는 누가 잘 했네, 누가 잘 못 했네 해를 넘기도록 잡음이 일고 있는데 중재도 못 하다가 관리 책임을 묻겠다고 하니 ‘셀프 검증’하겠다고 나선 꼴입니다.

진작에 완공됐어야 할 북항의 랜드마크가 이 지경이 됐습니다. 운 나쁘게도 러시아 전쟁까지 터지면서 추가 투입되어야 할 공사비는 천정부지로 솟구쳤고요. 그러나 ‘무능한 심판’에게 감사 이후 취해진 조치는 주의와 훈계 촉구 정도입니다. 도리어 감사 과정에서 ‘부실시공이 나왔다’하니 현장이 발주청 눈치를 보기 급급합니다.

통계청이 발간한 ‘국민 삶의 질 2021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대인 신뢰도는 2020년 50.3%까지 추락했습니다.

골이 깊어진 상호 불신에 갈 길 바쁜 대한민국이 발목을 잡혔습니다. 성장에 투입되어야 할 에너지가 날이면 날마다 터져나오는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는 데 탕진되고 있습니다.

뻔한 이야기지만, 경기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선수와 심판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심판이 되어야 할 리더와 고위직이 선수 사이에 숨어 자기보신에 급급합니다. 말단 선수가 심판 역할까지 떠맡아 허덕이니 경기는 막장으로 치닫습니다. 인지상정이라 사람 사는 세상에 갈등은 있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그 갈등을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소하느냐 입니다.

학교든, 건설본부든 한 조직을 끌고가는 리더라면 스스로를 한 번 들여다 보기 바랍니다. 당신은 혹시 ‘심판’의 역할을 팽개치고 있지 않습니까?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