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오대산은 벌써 단풍 절정...가을과 겨울의 공존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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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진고개~구룡령 구간 23.4km
1000고지 이상은 단풍 절정 이르러
오르내림만 15번 이상 인내력 요구해

백두대간 오대산 구간은 단풍이 절정에 이르렀다. 백두대간 오대산 구간은 단풍이 절정에 이르렀다.

해가 뜨자 온통 붉고 노란 단풍이 주위를 에워쌌다. 부산에서 덥다가 시원하다가 변화무쌍한 미궁의 계절 속에서 살다 왔는데, 오대산은 이미 겨울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절정이라고 해도 좋을 단풍이다. 올해는 단풍이 좋지 않다지만, 해발 1000m를 넘는 백두대간은 달랐다. 특히 노란 단풍이 많은 오대산은 몽롱한 늦가을을 만끽하게 했다. 바람이 세찬 구간은 잎을 다 떨구고 이미 겨울 채비를 한 나무도 있다. 산행 막바지에 겨울을 재촉하는 비를 맞으니, 손이 시렸다. 모든 것을 버리지만, 또 새로움을 준비하는 계절이 오고 있다. 겨울이다.


일출 장면을 담고 있는 황계복 강사. 일출 장면을 담고 있는 황계복 강사.

다소 만만하게 시작한 길

백두대간 오대산 구간은 다른 구간에 비해 거리가 길지는 않았다. 설악산 구간에서 고생한 기억이 생생해 23km 남짓의 산길을 만만하게 본 것도 사실이다. 산악 날씨를 확인하니 최저 4도까지 떨어진다. 물론 새벽 기온이다. 조금 두꺼운 옷을 챙겼다.

그런데 출발부터 살짝 걱정하게 하는 정보가 있다. 산행 안내를 맡은 부산등산아카데미 제1기 백두대간종주대(단장 박경효)의 이경규 선두 등반대장이 산행 코스를 설명하며 이번 산행은 다소 체력이 요구되는 구간이라고 했다.

진고개에서 구룡령까지 크고 작은 오르내림이 무려 15군데나 있다는 것. 그중 몇 개는 오르내림이 심하고 특히 막판에 '악' 소리가 나는 구간이 있으니 체력 안배를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달여 만에 나서는 산행이라 더욱 체력이 걱정됐다. 거기다 이 구간은 진드기 출몰 지역이라고 했다. 다행히 기온이 낮아서인지 진드기가 활동하지는 않았으나 산행 내내 조금이라도 따끔거리거나 간지러우면 신경이 쓰였다.


진고개 주차장의 새벽 풍경. 별이 총총거리는 하늘이다. 진고개 주차장의 새벽 풍경. 별이 총총거리는 하늘이다.

진고개 장엄한 밤 풍경

오대산 진고개 주차장은 유독 넓었다. 밤 기온은 서늘했고, 가로등은 어둠을 겨우 밀어내는 정도의 밝기로 우뚝 서 있다. 그 덕분에 하늘의 별이 총총하다. 북두칠성을 또렷하게 보는 것이 얼마 만인지. 가야 할 길만 아니면 몇 시간이고 하늘을 보며 앉아 있고 싶었다.

동대산을 향해 출발한다. 다들 방풍 겉옷을 꺼내 입었다. 산길이 가파르다. 에누리 없는 상승고도. 나중에 고도표를 확인해 보니 해발 1000m 쯤에서 400m 이상 치고 올라가는 오르막길이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동대산(1433m)까지 1시간 정도를 걸어 올랐다.

오대산의 주봉은 비로봉(1563m)인데 동대산과 두로봉(1422m), 상왕봉(1491m), 호령봉(1561m) 등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 오대산이라 불린다. 아름드리 전나무가 아름다운 사찰 월정사도 품고 있어 월정사 템플스테이도 인기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동대산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지만, 사위는 검다.


차돌백이에 있는 차돌(석영) 바위. 불빛을 받으니 환하게 빛이 난다. 차돌백이에 있는 차돌(석영) 바위. 불빛을 받으니 환하게 빛이 난다.

때아닌 한우 논쟁

빛이 희고 단단한 차돌박이. 그런 모양의 석영 바위가 덩그렇게 서서 어둠을 밝힌다. 현 위치 '차돌백이' 이정표 옆에 두 개의 커다란 석영 바위가 산꾼을 맞이한다. 이 구간엔 마늘봉도 있었다. 누군가 맛난 소고기구이를 말한다. 즐거운 상상에 도파민이 분비되는지 모두 한바탕 웃는다. 이참에 남도의 산꾼답게 의령 한우산을 끌어오는 이가 있다. 한우산은 그 한우가 아니라(의령 한우산은 찰비산으로 찰 한(寒) 비 우(雨)자를 쓴다고 한다)고 신세균 수목산악회 회장이 핀잔을 준다. 산행 도반들의 엎치락덮치락 대화가 재미있다. 여기는 오대산이다. 어쨌거나 차돌박이와 마늘만 해도 푸짐한 한우 한상은 거뜬하겠다.

동쪽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다. 쓰러진 물박달나무 곁을 지난다. 주변이 밝아오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붉게 물든 단풍이다. 물박달나무의 흰 수피와 묘하게 대비되는 강한 색상이 지금의 계절을 규정하라고 재촉한다. 가을인가? 여름의 끝자락. 아니다 이곳은 깊은 가을이고 어떤 곳은 초겨울이라고 해도 좋다. 대간은 계절이 반 박자 정도 앞서가는 모양이다.



둥치가 뚫린 아름드리 고목과 단풍이 지천인 숲길은 황홀했다. 둥치가 뚫린 아름드리 고목과 단풍이 지천인 숲길은 황홀했다.

반할 수밖에 없는 숲길

밝아온 빛이 저마다의 색깔을 뽐내는 나뭇잎을 깨우치니 온산이 울긋불긋 물들었다. 이미 떨어진 잎은 잎대로, 선선한 새벽바람에 흔들리는 노랗고 붉은 단풍은 또 그대로 아름답다. 오래된 숲에서 볼 수 있는 고사목과 나무둥치가 뻥 뚫린 고목이 산꾼에게 연거푸 인사한다. 그들의 안부를 물어야 하는데 갈 길이 멀어 묵례만 하고 지난다.

유독 둥치에 구멍이 뚫린 나무가 많아 자세히 보니 속이 검게 그을린 흔적이 있다. 어느 때인지는 모르나 화마의 피해를 본 것 같아 안쓰러웠다. 그러나 저 공간에 산짐승들이 깃들어 겨우살이를 할 것을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15번의 오르내림에 잔뜩 겁을 먹었지만 아직 체력이 남아서인지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두로봉(1422m)에서 상황봉으로 오대산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길이 있다. 다음에 꼭 와 봐야겠다고 다짐 하나를 적는다.


밑 둥치가 거의 훼손됐지만 푸름을 잃지 않은 주목. 밑 둥치가 거의 훼손됐지만 푸름을 잃지 않은 주목.

만월봉 지나자 천년 주목

만월봉(1281m)쯤에서부터 체력이 서서히 바닥나기 시작했다. 만월봉에는 북부지방산림청 홍천국유림관리소가 세운 커다란 백두대간 등산로 안내도가 있다. 안내에 따르면 만월봉은 바다에 솟은 달이 온 산에 비친다고 하니, 바다에서도 잘 보이고, 산에서도 바다가 보일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주위가 점점 짙은 운무에 둘러싸여 시나브로 어두워지는 중이어서 바다는 볼 수 없었다. 남은 구간에는 응복산(1359m)과 약수산(1306m)이 버티고 섰다. 차돌박이와 궁합을 맞춘(?) 마늘봉(1127m)도 있다.

만월봉에서 짙은 가을빛으로 물드는 떡갈나무 군락을 뒤로하고 응복산으로 간다. 한눈에 보기에도 오랜 세월의 흔적을 온몸에 새긴 아름드리 주목 한 그루가 있다. 둥치의 반은 썩어서 반원 형태이지만, 여전히 잎은 푸름을 자랑하고 있다. 나무의 기운이 좋아서인지 여러 사람이 쉬어간 흔적이 보인다.

응복산에 도착했다. 이곳 일대의 정상석은 돌이 아니라 금속판으로 돼 있다. 산세가 하도 험한 곳이라 운반하기 좋도록 그리 만들었는가 보다. 오늘의 목적지인 구룡령까지는 6.71km가 남았다는 오래된 이정표가 있다. 산꾼들의 지도에는 대략 6.8km로 안내돼 있다.


산행 막바지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산행을 마칠 즈음엔 그쳤다. 산행 막바지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산행을 마칠 즈음엔 그쳤다.

누적된 피로에 비까지

응복산을 지나자 산길이 한껏 고도를 낮춘다. 얼마나 내려가는지 두려울 정도로 떨어진다. 그러다가 다시 오름길이 시작되면서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는데 마늘봉(1127m)이다. 선두와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중간 대오를 책임진 명용익 산행대장이 적당한 거리로 안내해 준다. 너무 처지지 않게, 그러나 너무 힘들지 않게 챙겨주는데 민폐여서 고마울 따름이었다.

힘들기는 산행 베테랑인 황계복 부산등산아카데미 강사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물론 힘들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산행을 마치고는 "응복산~약수산 구간이 너무 지루했다"고 말했다.

약수산을 2.6km 정도 앞에 두고 제법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산행 전날 예보를 봤을 때 1시부터 비가 올 것이라고 했다. 기상예보가 어지간히 맞다. 모두 비옷을 꺼내 입었다. 모자챙에서 낙숫물이 뚝뚝 떨어진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치고는 제법 거세다. 빗줄기에 단풍이 든 잎사귀도 우수수 떨어진다.

손끝이 시릴 정도로 기온이 떨어진다. 황 강사는 이런 환절기가 등산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도시 기온만 느끼고 가볍게 산행을 준비했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구룡령으로 내려가며 사진을 찍기 위해 명용익 산행대장을 앞세웠다. 고도가 낮은 곳의 단풍이 더 보기 좋다. 구룡령으로 내려가며 사진을 찍기 위해 명용익 산행대장을 앞세웠다. 고도가 낮은 곳의 단풍이 더 보기 좋다.

마침내 구룡령에 도착

약수산까지의 길은 능선이 좌우로 매우 가팔랐다. 지형이 험하니 차단봉을 세워 산꾼들의 안전을 도모했다. 된비알을 오른다. 끝이 언제일지 몰라 위는 쳐다보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어쩔 수 없이 남은 길을 가늠하기 위해 고개를 든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젖은 산길을 올라 드디어 정상에 오른다. 탁 펼쳐진 풍경을 기대했는데 온통 '곰탕(비안개)' 조망이다. 그래도 이 장소가 평소엔 인제나 한계령은 물론 설악산 대청봉과 속초시, 양양군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인 모양이다. 오래된 사진 안내도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일탈하고 있다.

약수산 정상으로 착각했는데 정상석은 없고 한 대간꾼의 추모비만 있다. 가던 길을 조금 더 가니 약수산 정상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구룡령의 동쪽에 우뚝 솟은 약수산은 남쪽 골짜기의 약수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약수산 아래에는 명개약수가 있다. 명개약수는 철 성분이 있는지 샘 주변이 붉은 주황색이다. 인근에 불바라기약수, 갈천약수, 상봉약수 등이 있어 이 일대가 약수골이다.

약수산에서 구룡령까지는 심한 내리막길. 목책 계단과 돌계단이 번갈아 나오는데 보폭을 맞추기 쉽지 않다. 명 대장이 "아래로 내려올수록 단풍 때깔이 곱다"고 말했다. 생육환경이 좋으면 단풍도 더 붉다.

그렇게 느지막이 강원도 영동(양양)과 영서(홍천)를 가르는 분수령인 구룡령에 도착했다. 11시간 걸렸다.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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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국립공원 진고개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오대산국립공원 진고개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1시간 정도 오르막을 올라 동대산에 도착했다. 1시간 정도 오르막을 올라 동대산에 도착했다.

여명이 밝아오는 동쪽을 향해 드러누운 물박달나무. 여명이 밝아오는 동쪽을 향해 드러누운 물박달나무.


국립공원 구간의 이정표. 국립공원 구간의 이정표.

쓰러진 전나무의 가지가 곧게 자랐다. 생명의 끈질김이다. 쓰러진 전나무의 가지가 곧게 자랐다. 생명의 끈질김이다.

두로봉 갈림길에 도착했다. 두로봉 갈림길에 도착했다.

옛 시인이 아름다움을 읊었다는 만월봉 가는 이정표. 옛 시인이 아름다움을 읊었다는 만월봉 가는 이정표.

대간꾼들의 흔적이 오롯하다. 대간꾼들의 흔적이 오롯하다.

숲은 짙고 풍요로워 걷는 내내 행복했다. 숲은 짙고 풍요로워 걷는 내내 행복했다.

산림청에서 세운 만월봉 백두대간 안내도. 산림청에서 세운 만월봉 백두대간 안내도.

명개약수로 내려서는 갈림길. 여기서부터 체력이 소진돼 다소 힘든 구간이다. 명개약수로 내려서는 갈림길. 여기서부터 체력이 소진돼 다소 힘든 구간이다.


약수산 전망대. 운무에 가려 한계령과 설악산 대청봉은 찾을 수 없었다. 약수산 전망대. 운무에 가려 한계령과 설악산 대청봉은 찾을 수 없었다.


약수산 정상비. 약수산 정상비.


구룡령 터널 인근의 생태통로 출입금지 안내문. 철망엔 대간꾼들의 흔적이 빼곡하다. 구룡령 터널 인근의 생태통로 출입금지 안내문. 철망엔 대간꾼들의 흔적이 빼곡하다.

백두대간 구룡령비. 백두대간 구룡령비.

산행을 마친 부산등산아카데미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산행을 마친 부산등산아카데미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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