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초겨울 명징한 소백의 기운 흠뻑 마시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고치령에서 시작 소백산 비로봉까지 대간길
하산은 달밭골 거쳐 삼가주차장까지 5.5km
영하의 날씨 맑고 서늘한 공기 만끽하며 걸어
발 밑에는 얼음꽃, 잎을 버린 나목 군락 절경

상월봉에서 본 소백산 능선. 상월봉에서 본 소백산 능선.

11월 초순인데 영하의 날씨였다. 소백은 곳곳에 얼음꽃도 피었다. 서걱대는 서릿발 같은 얼음을 밟으며 발아래로부터 차가운 침을 맞는 느낌을 받는다. 또 능선은 충만했다. 이미 잎을 떨군 나목은 낙엽 비단길을 만들어 놓았다. 상월봉(1394m)의 조망은 탁월했다. 국망봉까지 튼실하게 이어진 대간과 비로봉의 늠름한 자태, 그리고 소백 일대의 크고 작은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국망봉으로 우회하지 않고 몸을 쓴 덕분이다.

이날 산행은 부산시민등산아카데미 총동창회 제1기 백두대간종주대(단장 박경효·총대장 김창진)과 함께 했다.


고치령산령각. 고치령산령각.

고치령 산령각엔 산신이 두 분

소백산국립공원 고치령~비로봉 구간 대간길은 맑고 차가웠다. 모처럼 새벽이 아닌 동이 튼 아침에 나선 산행길이어서 더욱 맑은 느낌이 충만하다. 총구간 19.7km를 8시간 동안 걸을 계획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버스가 갈 수 있는 마지막 마을인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서 해발 760m 고치령까지는 마을 이장님의 차량 지원을 받아 쉽게 접근했다. 소백산신과 태백산신을 함께 모신 산령각의 목문을 일행 중 누군가 열어젖혔다. 백마를 탄 동자 태백산신과 호랑이를 거느린 백미와 흰 수염이 휘날리는 할아버지 소백산신이 있다. 이야기로는 단종과 단종의 숙부 금성대군을 모신 곳이라고 한다. 영험하다는 소문이 나 요즘도 무속인들의 발길이 잦다. 고치령은 소백산에 속하지만, 태백산과 소백산을 연결하고 있다.

국망봉으로 향한다. 국망봉에 다다를 때까지 모든 이정표는 국망봉-고치령으로 안내되고 있다. 잠시 비알을 올라서자 낙엽 푹신한 능선길이다. 불과 한 달 새 단풍은 나목으로 바뀌었다. 자연에서 계절은 가장 뚜렷한 결과물을 낸다.

산행코스는 고치령(760m)~연화동 삼거리~늦은맥이재~상월봉(1394m)~국망봉(1420m)~어의곡 삼거리~비로봉(1439m)까지 가서 달밭골로 하산해 삼가탐방지원센터까지 이어진다.


뿌리가 뽑혔어도 살아남은 참나무. 뿌리가 뽑혔어도 살아남은 참나무.

강인한 생명력의 참나무

소백의 능선길은 다른 구간에 비해 그리 힘들지 않다. 능선의 해발고도는 1000m를 오르내리다가 상월봉 가까이 가서는 한껏 고도를 높인다. 크게 오르고 내리는 구간이 없는 것은 이곳이 소백산 국립공원의 등줄기라서 그런 것일까. 능선의 일렬로 선 나무들이 오늘이 11월 11일임을 상기시킨다. 일행 중 한 분이 이번 산행 참가자 모두에게 '빼빼로' 한 상자씩을 돌렸다. 초콜릿이 듬뿍 묻은 과자는 산행을 하기도 전에 다 먹었다.

단체 산행을 하면서 늘 고마운 것은 나눔이 많다는 것이다. 이미 버스에서 내리기도 전에 최연장자 '1번 형님'이 제공한 찰떡 하나를 먹었고, 또 주최 단체에서 나눠주는 팥빵과 음료도 받았다. 이번에는 나눔이 유달리 풍성하다. 탄산음료는 나중에 목마르면 먹을 생각으로 배낭에 챙겼다.

상큼한 귤, 달콤한 단감, 사탕, 커피, 막걸리 한잔, 피망, 게살죽, 박하사탕, 사과, 미숫가루, 쌀눈 죽 등등이 산행의 소중한 에너지로 쓰였다. 다 참가자의 배낭에서 나온 정이다. 소백의 정이 끈끈했다. 그런 때문일까. 능선 한쪽에 뿌리가 거의 다 드러난 참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덩치를 키워냈다. 웬만한 참나무보다 훨씬 우람하다.

죽을 위기를 겪었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나무가 경이롭다.



운동장처럼 넓은 낙엽 광장

갑자기 주위가 환해진다. 운동장만 한 넓은 공간이 온통 낙엽으로 뒤덮여 있다. 이렇게 넓은 공간이 능선에서 발견되다니. 사람의 보는 눈은 비슷한 모양이다. 이정표를 보니 마당치다. 마당처럼 넓은 고개란 의미로 보인다. 아직 국망봉까지는 8km 이상 남아 걸음을 재촉한다.

나무들은 불과 한 달 새 겨울 준비를 마쳤다. 나무가 옷을 벗자 겨우살이가 푸른게 돋보인다. 빨간 참빗살나무 열매는 눈에 금방 띄어 새들의 먹이가 되기 좋겠다. 그 씨앗들은 소백 능선 곳곳에 퍼질 것이다. 공생의 계절이 겨울이다.

초겨울 산행은 덥지도 춥지도 않아 딱 좋다는 이들이 많다. 이한철 후미대장과 동행하던 여성 두 분의 발걸음이 유달리 가볍다. 오늘은 왜 후미를 지키지 않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후미가 아니에요. 오늘은 중간이라 불러주세요." 이 후미대장은 오랜만에 산행에 참여해 느긋함을 즐기는 김창진 총대장과 함께 든든하게 뒷배가 되고 있다.


소백의 능선은 지금 영하 온도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발밑의 서걱거림이 지속된다. 자세히 보니 얼음이다. 땅밑 수분이 영하 날씨에 얼음이 되어 솟구쳤다. 흰 실타래 같기도 하고, 예쁜 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얼음꽃이 피었다. 겨울에는 야생에서 꽃이 피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이다. 이렇게 예쁜 얼음꽃이 피니 능선은 또 화려한 겨울 장식을 마친 셈이다. 이제 눈까지 온다면, 소백의 산줄기는 또 다른 멋진 풍경을 연출할 것이다.


고치령에서 3시간 걸리는 연하동 삼거리에 도착했다. 이제 2시간 남짓 걸으면 국망봉이다. 연화동으로 탈출하는 길은 의외로 짧다. 3km인데 1시간 40분이면 하산할 수 있는 모양이다. 소백산국립공원의 그림 이정표는 적절한 곳에 잘 설치돼 있다.


물푸레나무 군락지. 물푸레나무 군락지.

물푸레나무 군락지 황홀해

흰 페인트를 나무에 군데군데 칠한 것 같은 물푸레나무, 어릴 때는 흰 수피가 더욱 선명하다. 홀로 있는 나무도 아름답지만, 군집한 나무의 풍경도 독특한 매력이 있다. 능선 좌우에 도열한 듯 늘어선 물푸레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늦은맥이재다. 어의곡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다. 국망봉은 2.1km 남았다. 애써 선두를 따라잡았는데, 신세균 수목산악회장이 달달한 단감을 주면서 좀 더 쉬다 오란다.

늦은맥이재는 휴게 시설을 설치하는지 헬기로 운반한 듯한 톤백 여러 개가 놓여 있다. 상월봉으로 간다. 고도를 조금씩 올린다. 이끼가 많은 응달쪽으로 접어들었다. 마치 보호색처럼 된 짐승의 똥이 있다. 바위 위의 이끼와 어울려 깜박하면 손으로 짚을 뻔했다. 그래봐야 산 열매 씨앗과 껍질이다.

우산살처럼 펼쳐져 화려한 푸름을 자랑하던 봄날의 관중은 추위에 손을 들었다. 줄기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 그리고 서서히 푸름을 잃어갈 것이다. 그러나 생명은 뿌리로 갈무리되면서 내년 이른 봄 또 아름다운 이파리를 솟구쳐 낼 것이다.


상월봉은 절대 우회 못 하지

국망봉이 1.1km 남았다는 이정표는 상월봉을 우회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앞서간 사람들이 우회로를 두고 굳이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기에 정말 따라가야 하는가 싶었다. 결론적으로 안 갔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산행은 모름지기 정상에 올랐을 때의 느낌도 좋지만, 정상을 온전히 바라보는 풍경도 훌륭했다. 상월봉 풍경은 국망봉에서 비로봉으로 이어진 소백의 맏 능선과 사방팔방으로 뻗어 내려간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과 산 사이에 머무는 구름바다. 일망무제의 느낌은 오히려 상월봉이 비로봉보다 낫다는 느낌이다.

한참을 머물며 풍경을 카메라와 마음에 담았다. 먼저 출발한 일행이 멀리 국망봉으로 오르는 이들이 가물가물 보일 무렵 다시 걸음을 뗀다. 상월봉에서 국망봉으로 가는 길엔 산철쭉 군락이 도열하고 있다. 산철쭉이 피는 5월 말에서 6월 초까지 이곳에 온다면 잊기 힘든 꽃 터널을 걸을 수 있겠다.

옛 문헌에는 국망봉을 소백의 최정상이라고 기재해 놓았다. 아마도 산 아랫마을에서는 국망봉이 제일 높게 보이는 모양이다. 초암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에 이르니 비로봉은 2.8km 후에 있다.


아 소백산 비로봉에 다다르다

극망봉에서 비로봉을 가는 길에 특이한 모양의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제멋대로 굽은 나무다, 능선길에 큰 나무는 없다. 해발고도가 높은 탓이리라. 멀리 우람한 비로봉 능선이 보인다. 긴 덱 길이 비로봉까지 이어져 있다.

바람이 많은 탓일까. 나무 한 그루 찾을 수 없다. 긴 풀들은 이미 머리를 남쪽으로 누이고 드러누웠다. 가지런한 자세는 북서풍에 대응하는 자연의 법칙이다. 다들 정상석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추위가 엄습한다. 온도계를 살펴보니 양지인데도 영하 7도다. 삼가주차장을 향해 하산한다.

산길은 잘 정비돼 있어 전혀 무리가 없다. 설악산국립공원 한계령 하산로와 비교하면 탄탄대로다.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민가가 나온다. 물어보니 주민의 집이다. 안전 산행하시라고 인사해 준다. 식당업을 하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분이다.

달밭골 마을에 도착했다. 1번 형님과 박경효 단장이 1번 형님과 함께 막걸리판을 펼쳐 놓았다. 연거푸 몇 잔을 받아 마신다. 달밭골 조형물은 뭔가 전설을 이야기하는 모양새다. 이미선 간사가 조형물 사이에 자리 잡았다. 잘 어울린다. 그렇게 초겨울 소백 능선을 걸었다.


부산일보 | 안녕하세요! 산&길입니다🌿 오늘 영상은 '백두대간 소백산'편입니다! 해발 1000고지를 넘나들며 이어지는 대간길부터 물푸레나무, 산철쭉 군락까지 펼쳐지는 고치령~소백산 구간🌳 초겨울 소백산 산행😊 함께 감상하시죠🤗 ---------------------------------------------------------------------------- 📌유튜브 '펀부산' 구독하시면📌 🔥재미있고 특별한 영상이 함께합니다🔥 ----------------------------------------------------------------------------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참빗살나무 열매가 붉다. 참빗살나무 열매가 붉다.

늦은맥이재 공사 현장. 늦은맥이재 공사 현장.



산짐승이 남긴 흔적. 산짐승이 남긴 흔적.

내년 봄을 기다리는 소백산 산철쭉. 내년 봄을 기다리는 소백산 산철쭉.

세월의 흔적을 담은 기묘한 나무. 세월의 흔적을 담은 기묘한 나무.


비로봉 직전 어의곡주차장 삼거리 이정표. 비로봉 직전 어의곡주차장 삼거리 이정표.

소백산에는 곳곳에 이정표와 그림 안내판이 있다. 소백산에는 곳곳에 이정표와 그림 안내판이 있다.

비로봉에서 함께 한 부산시민등산아카데미 백두대간 종주대. 비로봉에서 함께 한 부산시민등산아카데미 백두대간 종주대.

달밭골에서 처음 만난 민가. 달밭골에서 처음 만난 민가.

달밭골에는 멋진 조형물이 있다. 삼가주차장까지는 또 한참 걸어야 한다. 달밭골에는 멋진 조형물이 있다. 삼가주차장까지는 또 한참 걸어야 한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