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유명인의 피의사실 공표, 국민의 알권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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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지난해 11월 24일, KBS 9시 뉴스는 ‘단독’이란 타이틀을 달고 유명 배우와 유흥업소 실장의 사적인 대화 녹음 파일을 고스란히 보도했다. 해당 배우가 실장을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한 남녀 간의 사적인 대화 내용까지 공영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내 눈과 귀를 의심했다. 그렇게 2달여 동안 숱한 보도기사가 쏟아지면서 그 배우는 디지털 감옥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도대체 해당 언론들은 어떻게 통화 내용을 단독으로 입수하여 공개하고, 당사자의 경찰 진술 내용까지 단독으로 확인하여 보도할 수 있었을까. 2차례에 걸친 마약 모발 감정이 음성으로 나왔음에도 그는 법정에 서기도 전에 경찰과 언론에 의해 여론재판을 받았다.

국민의 알권리라는 명분으로 쏟아지는 유명인에 대한 피의사실과 관련된 보도가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공표죄와 상충되는 것은 아닌지 짚어봐야 할 문제다.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공표죄는 피의자가 기소되기 전에 수사기관 등이 피의사실을 공표할 때 성립하는 죄다. 피의자의 인권침해를 방지하고자 제정됐지만, 국민의 알권리와 충돌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그동안 기소 전 피의사실을 알리는 언론 보도가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오면서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형법에 버젓이 처벌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소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유명 배우, 디지털 감옥 속에서 운명

사적 대화 내용까지 방송에 마구 공개

피의사실공표 내로남불 정쟁거리 전락

무죄추정과 피의자 인권 적극 고려해야

언론 무분별한 보도 강력히 제재하고

법원의 금지명령 등 세부 입법 추진해야

먼저 국민의 알권리의 대상으로서 ‘피의사실’과 ‘범죄사실’은 구별되어야 마땅하다. 수사기관에 의한 ‘피의사실의 공표’는 피의자에 대해 수사를 한 수사기관의 주관적인 의견이 개입될 수밖에 없고, 무죄추정의 원칙상 이는 알권리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워 피의사실의 공개를 요구하는 언론의 행태나 그러한 요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표했다는 수사기관의 해명은 이해하기 어렵다. 수사 상황에 대한 보도가 검찰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 역할을 할 수는 있으나,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 행위는 공권력에 의한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국민들에게는 그 내용이 진실이라는 강한 신뢰를 부여하고 피의자나 그 주변인들에게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기에 공표는 신중해야 한다.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서 대법원은 공표 목적의 공익성과 내용의 공공성, 필요성, 공표된 피의사실의 객관성 및 정확성, 피의사실의 공표로 인하여 생기는 피침해이익의 성질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과연 이번 사건에서 고인이 된 배우의 피의사실 공표에 공익성과 피침해이익에 대한 형량 판단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2022년 9월에 배우 L 씨가 약에 취해 걸어 다녀 경찰이 출동했다고 언론은 실명까지 보도했지만, 결국 혐의없음으로 종결되었다. 해당 배우는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었는데 마약과는 무관하다는 게 경찰의 최종 결론이었고, 신문윤리위원회는 해당 언론에 대해 주의 조치를 결정했다.

그 사건을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경찰의 사건 흘리기와 언론의 받아쓰기 행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피의사실 공표 논란은 그동안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 수사 당시에 법무부는 기존 수사공보준칙을 폐지하고 공표 금지의 강도를 더욱 높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제정했다. 그러나 해당 규정 역시 수사 상황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고 절차도 복잡해 실무상 실효성이 없었다.

사문화된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더 이상 ‘내로남불’의 정쟁거리로 둘 것이 아니라, 피의사실공표를 일률적으로 막을 수 없다면 무죄추정의 원칙과 피의자 인권을 고려해 기소 전 단계에서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수사기관이 흘리고 언론이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것을 방지하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입법안이 필요하다.

또한 수사기관의 판단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법원의 피의사실 공개 금지명령제도의 도입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보도와 방송, 언급 등의 금지를 명령할 수 있는 가처분 신청 제도처럼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해 법원의 판단을 통하여, 금지명령 신청이 있으면 명예훼손이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고려해 법원이 신속히 공포 금지명령을 내리고 위반 시 처벌하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언론 역시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하여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여 유죄를 속단하게 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나 추측, 예단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표현을 자중하여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한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를 가하여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고인이 된 배우의 죽음은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지만, 그 죽음을 계기로 달라지는 바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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