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지는 이야기] 잠과 노화 그리고 호르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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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해운대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동남권항노화의학회 사무총장

인간은 인생의 30%를 잠을 자는 데 쓴다. 80년을 살면 약 24년이 수면 중인 것이다.

이상하게 잠자는 동물들도 많다. 돌고래는 헤엄을 치면서 좌우의 뇌가 번갈아 잠을 잔다. 말은 천적으로부터 빨리 도망가기 위해 서서 잠을 잔다. 사실 잠을 자는 동안은 완전 무방비 상태로 가장 공격당하기 쉬운 위험한 상태가 되는데도 잠을 자지 않는 동물은 없다.

왜 꼭 잠을 자야 할까?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최근 연구를 통해 잠을 자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우스 키핑’ 과정이 일어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하우스 키핑은 세포 내 유전자 복제나 생명 활동, 기능 유지에 필수적인 활동이다. 이를 위해 의식이 없는 뇌 상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면 중 노폐물 제거로 기억 및 인지 기능에 영향을 주고 여러 대사, 면역에 관계하는 작용들이 일어나 우리 생명에 필수적이라는 가설들이 제시되고 있다.

우리 몸에는 수면과 각성 주기를 관장하는 생체시계가 있다. 수면호르몬인 멜라토닌이 시계를 조절한다. 멜라토닌은 우리 뇌의 송과선이라는 작은 샘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생성 주기는 빛과 연관되어 있는데,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올라가기 시작해 새벽 2~4시경에 가장 높다가 천천히 낮아져 낮에 가장 낮아진다.

이런 정상적인 패턴은 나이가 들면서 변하게 된다. 한밤중의 높은 피크가 노령으로 갈수록 점점 낮아져 70대 이후에는 피크가 없어지다시피 하여 실제 혈중 멜라토닌의 농도가 아주 낮아지게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잠들기가 어렵고 일찍 잠을 깨고 깊은 잠을 자기 어려운 것이다.

멜라토닌은 아주 태고적 생물로부터 우리 인간에 이르기까지 40억 년 가까이 계속 유지되어 왔는데, 그 이유가 강력한 항산화 효과와 면역 작용 때문이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멜라토닌은 뇌뿐만 아니라 심장, 간, 콩팥 같은 여러 장기들과 각종 면역세포들에 존재하면서 여러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면과 멜라토닌의 부족이 암 발생과 치료에 영향을 끼치고, 당뇨병, 고혈압, 동맥경화증, 심부전, 골다공증과도 관련이 있다. 필자가 속한 인제의대 백병원 내분비내과의 연구에서도 멜라토닌이 혈당조절 호르몬인 인슐린을 분비하는 조직을 보호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멜라토닌은 뇌에서 가장 많이 분비된다. 따라서 치매, 파킨슨병, 인지기능 장애, 조현병, 우울증과 밀접한 연관성이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질환들이 모두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빈도나 정도가 높아지고 있으므로, 잠과 수면호르몬인 멜라토닌은 노화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멜라토닌의 수면에 대한 효과는 증명이 되어 실제 임상에서도 사용하고 있지만, 다른 효과들은 좀 더 기다려봐야 한다. 결국 잘 자는 것이 노화방지에 아주 중요하다. 잠은 천연 노화방지 호르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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