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AI 반도체 대박 명암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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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 주연 손석구의 아역은 인공지능(AI) 캐릭터였다. 어릴 적 사진으로 만든, 이른바 딥페이크였는데 너무 닮은꼴이어서 시청자들이 깜빡 속았다. 눈부신 기술이긴 한데, 떨떠름한 뒷맛이 남는다. 가짜 배우 탓에 어떤 단역 배우는 얼굴을 알릴 기회를 잃었다. 톱스타의 스턴트 대역 등 무명 배우의 일자리도 불안하다. 이미 SF, 애니메이션 속 외계인, 괴수 캐릭터도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AI 제작이 일반화됐다. 배경 음악도 마찬가지. 관련 일자리는 사라지는 중이다.

생성형 AI의 선두 주자 오픈AI가 출시한 ‘소라’(Sora)는 주문형으로 1분짜리 영상물을 뚝딱 내놓는다. 영상 업계는 실사 수준의 퀄리티에 아연실색했다. AI가 언어 장벽을 허물자 어학 교육이 흔들리고 있다. 외국어 전공 학과가 사라진 곳에 어학과 AI를 묶은 AI융합대학까지 등장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지난해 AI 무인 택시가 도입됐는데, 최근 일자리에 불만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군중이 이 택시를 ‘화형식’에 처했다. 미국 테크기업에서 올 들어 2만 명 이상 해고됐으니 AI가 공공의 적이 됐을 법하다.

AI 쓰나미의 동력은 그래픽 반도체(GPU)다. AI 확산일로에 힘입어 GPU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니 시장 전망은 장밋빛 일색이다. GPU 제조사인 엔비디아 주가는 22일 뉴욕 증시에서 16% 넘게 폭등해 시총이 하루 만에 2770억 달러(약 368조 원) 늘어나는 신기록을 썼다. 이날 일본도 AI와 반도체 종목 강세로 닛케이지수가 2.19% 오른 3만 9098을 기록했다. 34년 2개월 만의 최고치다. 반도체에 뒤졌던 일본은 대만 TSMC 공장을 유치해 한국 추격에 올인했다. 미국 인텔은 파운드리(위탁 생산)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2027년까지 ‘꿈의 공정’으로 불리는 1.4나노미터 공정 개발을 선언했다. TSMC와 삼성전자에 대한 선전포고다. 미국 정부도 아시아 생산 비중을 미국으로 되찾아 오겠다는 목표로 거액의 보조금을 추진한다.

개선장군처럼 일자리를 잠식하는 AI에 당혹스러운 와중이라 AI 반도체 대박 소식은 착잡하다. 게다가 ‘AI 군비 경쟁’은 살벌하다. 삼성전자 주가는 연초 대비 8% 이상 떨어졌다. AI 반도체에 늦었고, 파운드리는 과열인 탓이다. 한국은 미국 주도 ‘칩4 동맹’에 속해 있으나 동맹 내 경쟁 기류가 확연해서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한 방에 훅 간다. 경쟁력이 관건이다. 내 일자리도, 반도체 산업도.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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