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저성장 시대엔 수능 없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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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최근 잠재성장률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과거에는 성장률이 크게 문제가 된 적이 없다. 오랫동안 많게는 10% 이상, 적어도 5% 가까운 성장률은 달성해 왔기에 잠재성장률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실질성장률이 꾸준히 감소하고 마이너스 성장도 경험하면서 비로소 우리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성장의 비결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 정도에 불과하다. 잠재성장률을 결정하는 대표적인 요인은 노동력·자본·생산성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저 출생률,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화로 노동력 투입이 늘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 경제 자체가 자본집약적이어서 새 자본의 투입 여력도 크지 않다. 결국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데 생산성의 바탕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사고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의 활력이 떨어진 배경으로는 엉뚱하지만 아파트와 학교 급식, 패스트푸드 같은 음식 문화를 지적하고 싶다. 아파트는 제법 편리한 주거공간이지만 매우 획일적이다. 대도시의 경우 시민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산다. 특정 지역으로 좁히면 대부분에 이르는 곳도 있다. 게다가 아파트는 건축 효율을 위해서 층고를 최대한 낮춰 놓았다. 또 같은 면적이면 전국적으로 구조도 비슷하다. 그 결과 대단히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획일적인 공간은 획일적인 사고를 낳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 침체, 생산성 향상 관건

바탕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사고

하지만 교육 현장의 획일성은 여전

국내 건설사, 발상 바꿔 잇단 성공

교육 분야도 이제는 생각 전환 필요

현재 수능 제도로는 미래 대비 난망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라는 말이 있듯이, 먹거리 또한 다양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초·중·고교에서 모든 학생이 똑같이 급식을 먹고 있다. 즐겨 찾는 음식도 피자 치킨샌드위치이고, 이러한 음식을 파는 곳은 대부분 프랜차이즈여서 음식물의 조리법이나 맛도 일률적이다. 먹는 음식도 비슷하고 즐기는 맛도 비슷하게 됐다. 혁신이나 창의는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공간과 음식이 달라야만 이러한 여지도 커지는 것은 아닐까.

층고가 획일적인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각종 사교육 때문에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한 학생들에게 혁신과 창의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혁신이나 창의성을 특별한 교육을 통해 획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오히려 부족함이나 괴로움·귀찮음에서 생겨날 수도 있다. 과거의 교육은 지금보다 더 획일적이었지만 최근까지 우리는 많은 혁신을 이루어왔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인도네시아는 수도 자카르타와 식물원으로 유명한 보골 사이에 고속도로를 건설하기로 하였다. 이때 우리나라 건설회사가 선진국의 다른 많은 회사를 제치고 거의 절반 가격에 공사를 따냈다. 비결은 간단했다. 여름철 우기에도 공사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원래 열대지역의 우기에는 공사를 하지 않는 게 상식이었다. 우리나라도 보통 비가 오면 공사를 쉰다. 그런데 스콜은 우리나라의 비와 다르다. 엄청난 소낙비가 쏟아지지만 10분 정도면 그치고 다시 50분 정도 쨍쨍한 날씨가 이어진다. 소낙비가 오는 동안만 공사 구간을 비닐도 덮어 놓았다가 비가 그친 뒤 다시 공사를 계속했다. 이런 방식으로 공기와 공사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60km의 고속도로를 성공적으로 완공했다. 비가 오면 공사를 하지 못한다는 상식을 뒤집었을 뿐이다.

같은 무렵 필리핀에서는 한국 회사가 마닐라시의 식수 공급을 위한 콘크리트댐을 건설 중이었다. 역시 절반의 공사비를 제시해 공사를 수주했다. 콘크리트는 타설과 양생 과정에서 기온이 높으면 제대로 굳지 않는다. 당연히 필리핀에서는 여름철에 이런 공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회사는 먼저 제빙 공장을 짓고 물 대신 얼음과 콘크리트를 함께 타설했다. 얼음 덕분에 양생에 필요한 온도를 유지하며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제빙 공장은 얼음을 만들어 필리핀 현지에 팔았다. 얼음도 녹으면 물이 된다는 자명한 상식을 공사 현장에 접목했을 뿐이다. 우리나라 건설업이 일궈낸 놀라운 사례들이다.

현재의 교육은 창의성을 중요시한다고 하지만 우수한 학생들은 거의 모두 의대로 가려고 한다. 자율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교육이 현재까지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셈이다. 혁신이나 창의는 아파트 못지않게 획일적인 교실에서 이루어지기 어렵다. 최악은 전국의 모든 학생이 똑같은 시험을 똑같은 교재로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능과 같은 구태의연한 제도에 집착하는 한 저성장 시대를 대비할 창의와 혁신을 확보하기 어렵다. 수능부터 없애면 중·고교와 대학이라도 학생을 교육하고 선발하기 위한 창의적 사고에 골몰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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