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자루 옆에 방치된 조선시대 추정 명문석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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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동구 어린이공원에 사실상 방치
대걸레 등 청소도구 초석에 올려둬

5일 부산 동구 좌천동 좌천범일어린이공원 담장에 놓여있던 조선시대 추정 명문석. 이우영 기자 5일 부산 동구 좌천동 좌천범일어린이공원 담장에 놓여있던 조선시대 추정 명문석. 이우영 기자

부산 한 어린이공원 담장에 조선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명문 초석이 쓰레기 자루 옆에 방치되고 있다. 승정원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기록된 초석은 연구 가치가 높다는 판단이 나왔지만, 오랜 시간 문화재로 관리하거나 보존하려는 실질적인 움직임은 없었다.

5일 낮 12시 부산 동구 좌천동 좌천범일어린이공원. 철길 쪽 담장 앞에는 가로 162.5cm, 세로 50cm 규모 석재가 놓여 있었다. 화강암으로 보이는 돌 위에는 청소용 집게와 대걸레가 올려진 상태였다. 석재 왼쪽에는 쓰레기가 한가득 담긴 마대가 있었다.

쓰레기 곁에 방치된 석재는 조선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명문 초석. 오른쪽부터 위아래로 ‘감동내감 서완순 / 감관 이의순 / 도색 이중수 / 병진초동부백서’라는 한자가 왼쪽으로 한 줄씩 새겨져 있었다.

5일 좌천범일어린이공원 초석 위에 대걸레와 집게 등 청소도구가 놓여있다. 이우영 기자 5일 좌천범일어린이공원 초석 위에 대걸레와 집게 등 청소도구가 놓여있다. 이우영 기자
5일 좌천범일어린이공원 초석 위에 놓인 마대 안에 있던 청소용 집게. 이우영 기자 5일 좌천범일어린이공원 초석 위에 놓인 마대 안에 있던 청소용 집게. 이우영 기자

앞서 동구청은 2020년 6월 부산박물관과 명문 초석 조사를 위한 업무 협약을 맺었다. 부산박물관은 이듬해 1월 ‘서체 등이 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매우 높을 것이라 판단돼 문화재 보존과 활용 방안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조치가 필요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하지만 3년이 흐른 지금까지 초석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고, 청소 도구를 올려두는 용도로 방치된 상태다.

당시 부산박물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명문 초석은 건물 연혁을 알리는 머릿돌로 추정된다. 가공된 석재 규모와 관리 이름 등을 고려해 대규모 토목·건축 공사와 관련됐다고 판단했다.

감동내감, 감관, 도색은 모두 조선시대에 사용한 벼슬 명칭이다. 감동내감은 국가나 민족 또는 공공을 위해 큰 공사를 감시하는 임시 관리, 감관은 관아에서 금전 출납을 맡은 관리, 도색은 관아에서 세금을 거두는 아전(하급 관리)을 뜻한다. 특히 감동내감 서완순은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인물로 추정된다. 1826년 태어나 1855년 무과에 급제했기에 초석에 새겨진 ‘병진’년은 1856년일 가능성이 있다.

5일 좌천범일어린이공원 초석 옆 마대 안에 담긴 쓰레기. 이우영 기자 5일 좌천범일어린이공원 초석 옆 마대 안에 담긴 쓰레기. 이우영 기자

이러한 역사적 유산이 방치되자 보존 방안을 시급히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시 제대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협약까지 맺었는데, 말만 앞선 행정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김미연 동구의회 의원은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판단을 받았다면 제대로 보존할 방안을 마련했어야 했다”며 “오랜 시간 청소 도구 옆에 방치할 게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유산으로 넘겨줄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구청은 부산박물관으로 이전을 추진하거나 새롭게 보존할 공간을 물색하겠다는 입장이다. 동구청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예전에는 구청 마당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신청사 건립 과정에서 현 위치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어린이공원으로 가게 된 경위는 파악이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부산박물관에 요청해 보관이 가능한지 의논해 보겠다”며 “상황이 여의찮으면 구청이나 다른 공간으로 옮기는 방안을 찾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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