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예산 줄이는 공약’이 2030 마음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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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공모 칼럼니스트

밥벌이로 6년 전부터 청소년 대상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주로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청소년참여기구 대상 정책 강의다. 필자가 중고등학생이던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청소년이란 모름지기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존재였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지역마다 청소년 사회 참여 증진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청소년의회나 청소년참여위원회 같은 것들이다. 몇몇 기초의회는 매년 청소년의회를 운영하며 이들이 제안한 조례를 의정에 반영하기도 한다.

청소년들이 무슨 조례를 만드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심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제안하는 정책의 수준이 높다고 보긴 어렵다. 많은 경우가 단편적인 해결책을 내놓는다. 범죄자 처벌을 늘려 달라든가 교통비·교복비 등을 지원해 달라는 식이다. 사실 이들에게 정책의 완성도를 기대하진 않는다. 대신 사회에 참여하는 역량을 기르고 정책 입안 과정에서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데 의의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고등학생만 돼도 이야기가 달라진다. 머리 좀 굵었다고 현실성을 따지기 시작한다. 예산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다짜고짜 청소년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하기보다 현 제도의 허점을 찾고 바꾸려 노력한다. 그런 걸 보면 가끔은 ‘청소년의원’들이 현역 정치인보다 낫다는 생각도 든다.

다양한 청년정책 삶 개선하지 못해

여야가 남발한 선심성 청년 공약

청구서 언젠가 되돌아온다 인식

청년들이 힘든 건 미래에 대한 불안

현금 지원성 정책 남발하지 말고

책임지고 미래 이끌 정당 면모 보여야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은 다양한 내용의 공약을 쏟아 내고 있다. 그 양상을 보면 마치 도박판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쪽에서 선심성 공약을 내지르면 다른 한쪽에서 거기에 뭘 더 얹어서 추가 제안을 한다. 판돈은 끊임없이 상승한다. 하다못해 도박은 ‘올인’하더라도 참가자가 가진 돈까지이지만, 정치권이 쏟아 내는 공약은 나라 예산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야 모두 약속한 철도 지하화 공약만 봐도 그렇다. 도심 지역 노선을 지하화하고 그 위에 공공주택·주거복합시설을 짓는 데 80조 원 이상(민주당 추산)이 소요된다고 한다. 민간 개발로 비용 부담을 덜겠다고는 하나 그게 정말 실현될 거라고 믿는 유권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다른 공약도 비슷하다. 청년들의 삶이 어려워 보이니 교통비를 보조해 주거나 청년 대상 대출·주택공급을 늘리자고 한다. 청년뿐 아니라 어르신, 신혼부부,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정책 패키지’도 쏟아진다. 세입은 정해져 있는데 공약 이행에 들어가는 돈만큼 다른 어디서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쯤 되면 공약의 진정성을 믿는 게 이상한 일인 것 같다.

한국갤럽이 지난 1일 공개한 정기 여론조사에 따르면 18~29세 청년의 무당층 비율은 40%에 달했다. 30대는 24%였다. 보통 선거가 임박하면 무당층이 줄어든다. 그런데 많은 청년이 여전히 지지하는 정당을 고르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은 이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온갖 청년정책을 제시하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무엇보다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퍼주기식 청년정책은 이미 2010년대부터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됐다. 청년수당, 구직 지원금 등 다양한 이름의 청년정책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로 청년들의 삶이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역을 떠나는 청년은 계속 느는 반면 출산율은 더 낮아지고 있지 않은가. 부산시의회 김형철 의원(국민의힘·연제2) 역시 지난해 9월 임시회에서 “부산시가 5년간 청년정책으로 7000억 원에 가까운 예산을 투입했지만 청년들이 그 효과를 체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것저것 지원해 주면 청년들이 좋아할 거라는 판단은 오산이다. 2030 세대는 직접 돈을 준다고 해도 반기지 않는다. 그 청구서가 언젠가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1년 7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연 200만 원을 지급하는 청년 기본소득 공약을 발표했을 당시 수혜자인 청년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2022년 1월 한 여론조사에서도 18~29세의 60.7%가, 30대의 58.2%가 기본소득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찬성은 각각 33%, 33.5%에 그쳤다.

청년들에게 당장 오늘 힘든 건 큰 문제가 아니다. 그것보다 이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건 불안한 내일이다.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해 자기 삶도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들을 지배하고 있다. 책임감 없는 정치는 그 불안한 미래를 더욱 앞당긴다. 따라서 정치를 향한 청년들의 높은 불신을 해결하려면 현금 지원성 정책을 남발하기보다 책임지고 미래를 이끌 수 있는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 줘야 한다. 차라리 불필요한 사업 정리하자고 주장하는 게 청년 표심을 얻는 데 더 도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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