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새는 죄가 없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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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개봉한 영화 ‘조폭 마누라’의 한 장면. 주인공인 조폭 은진에게 아이가 묻는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새가 뭐지요?” 은진은 고민하다 진지한 목소리로 답한다. “짭새!”

짭새는 국어사전에도 올려져 있다. ‘범죄자들의 은어로, 경찰관을 이르는 말’, 요컨대 경찰 공무원을 뜻하는 비속어인 것이다. 유래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다. ‘(범인을) 잡다’의 어근인 ‘잡’에 마당쇠나 돌쇠처럼 신분이 낮은 사람을 뜻하는 접미어 ‘쇠’를 붙인 ‘잡쇠’에서 변형됐다는 게 그 하나다. 1980년대 연세대 시위 과정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연세대의 상징이 독수리인데, 당시 시위대 속 사복경찰을 일러 ‘잡새’로 조롱했다는 게다. 무엇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경찰을 얕잡아 보고 비하하는 뜻임은 분명하다.

‘새’는 특정 직업을 비하하는 표현에 유달리 많이 동원된다. 머리 깎는 사람은 깍새, 구두 닦는 사람은 딱새, 사진 찍는 사람은 찍새…, 그런 식이다. ‘새’에는 욕설의 뉘앙스도 살짝 묻어 있는 듯해서 듣는 사람은 심히 불쾌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 말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명예훼손으로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요즘 난데없이 의새가 화제다. 의사들이 스스로를 의새에 비유하며 각종 SNS를 통해 인증 몰이에 나서고 있어서다. 참새 등 각종 새를 의사 이미지와 합성한 이미지를 게시물로 올리는 식이다. 대개는 의새들이 진료실에서 환자와 상담하거나 수술실에서 집도하는 모습인데, 간혹 쇠고랑 찬 의새도 등장한다. 의대 정원 확대를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정부를 비꼬는 것인데, 보는 이로서 썩 유쾌하지는 않다. 국민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을 의사들이 가벼운 장난으로 대하는 듯해서 그렇다.

영화 ‘조폭 마누라’ 개봉과 같은 해에 가수 싸이가 ‘새’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가사 중 ‘나 완전히 새됐어’라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 이 ‘새됐어’의 뜻이 무엇인지를 두고 말들이 많았는데, 싸이는 “클럽에서 유행한 은어”라며 “상대에게 잘해줬지만 돌아오는 게 없어 허무한 심정을 표현한 말”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어사전에 ‘목소리가 높고 날카롭다’는 뜻으로 명기된 ‘새되다’는 이로써 전혀 엉뚱한 의미로 유행하게 됐다. 애만 쓰는 비루한 자신을 일컫는 의미가 된 것이다. 의사들, 스스로를 의새로 비하하다 어쩌면 진짜 새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황당한 상황에 애꿎은 새만 동원돼 수난하고 있으니, 헛웃음만 나올 따름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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