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따라 많이 잡힌 정어리…그물째 쌓아둔 채 급히 돌아오다 참변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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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 사망·1명 실종 제102해진호 침몰
정어리 상당량 그물째 선미 좌현 적재
수협 위판 시간 맞추려 성급하게 운항
선수 들리며 왼쪽으로 순식간에 전복
“과적은 아니지만 무게 중심 높아져”
조업금지구역 불법 조업 여부도 수사

통영해양경찰서 이정석 수사과장이 15일 브리핑을 통해 제102해진호 수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부산일보DB 통영해양경찰서 이정석 수사과장이 15일 브리핑을 통해 제102해진호 수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부산일보DB

속보=3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된 제102해진호 침몰 사고(부산일보 3월 15일 자 1면 보도) 원인으로 ‘어획물 적재 불량’이 지목되고 있다. 포획한 물고기 상당량을 어창이 아닌 어선 한 귀퉁이에 쌓아두면서 무게 중심이 쏠려 선박이 복원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위판 시간에 쫓긴 무리한 운항도 한몫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경은 불법조업 여부를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고 과정을 되짚고 있다.

16일 통영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4일 오전 4시 20분께 욕지도 남방 4.6해리(약 8.5km) 해상에서 침몰한 부산 선적 쌍끌이대형저인망 102해진호는 어획물을 그물째 선미 한쪽에 올려둔 상태로 이동하다 선수(뱃머리)가 들리며 뒤집혔다.

주선과 종선 2척이 대형 그물을 양쪽에서 끌며 조업하는 쌍끌이어선은 어획물을 20kg들이 상자에 나눠 담아 갑판 밑에 있는 어창에 보관한다. 어획물이 무게 중심을 낮춰 선체 복원력(원래 상태로 돌아가려는 힘)을 높인다.

하지만 102해진호는 정어리로 가득 찬 자루그물을 좌현 선미 쪽에 내려놓은 상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조항이 좋아 양이 많았던 데다, 오전 6시 시작되는 수협 위판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다.

외국인 선원 7명이 갑판에서 어획물을 정리하며 어창으로 옮기는 사이 배는 통영항으로 향했다. 그러나 얼마 못가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더니 바닷물이 들어차기 시작했고, 불과 2~3분 만에 가라앉은 것으로 보인다는 게 해경 설명이다.

이정석 수사과장은 “파고는 1~1.5m 내외로 잔잔했다”면서도 “어획물을 갑판 위에 두면 무게 중심이 높아져 1~2m 낮은 파도에도 휘청일 수 있다”고 했다.

통영해양경찰서 구조대 도착 당시 사고 해역 주변에 어획물 상자들이 흩어져 있었다. 해경 구조대가 그 사이를 제집으며 부상자를 구조하고 있다. 부산일보DB 통영해양경찰서 구조대 도착 당시 사고 해역 주변에 어획물 상자들이 흩어져 있었다. 해경 구조대가 그 사이를 제집으며 부상자를 구조하고 있다. 부산일보DB

다만, 과적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102해진호는 어선 중에선 대형에 속하는 139t급으로 최대 적재량은 96t이다. 반면, 당시 배에 실린 건 절반 수준인 2000여 상자, 40t 남짓이었다.

사망 또는 실종자가 모두 한국인인 이유에 대해선 선장, 항해사, 기관장 등 관리자들인 탓에 조타실 등 실내 머물고 있었던 탓에 실외 작업 중인 외국인 선원에 비해 쉽게 빠져나오기 못한 것으로 추정했다.

102해진호에는 선장, 항해사, 기관장 등 한국인 선원 4명과 인도네시아 선원 6명, 베트남 선원 1명 등 11명이 승선했다. 이 중 10명이 구조됐지만, 선장 등 한국인 3명은 이미 심정지 상태였고,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다. 외국인 선원은 모두 무사했다. 나머지 1명은 60대 한국인 기관장으로 실종 상태다.

조업구역위반 등 불법조업 여부도 들여다보고 있다. 102해진호가 잡은 어획물 대부분은 정어리였다. 해진호 선단은 평소엔 삼치를 주로 잡는데, 최근엔 정어리를 잡았다. 양식장 사룟값이 폭등하면서 정어리 단가가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어리 어군이 형성되는 욕지도 인근은 대형쌍끌이어선 조업금지구역이라는 점이다. 수산업법에 따라 이들 선단은 동경 128도(남해군 앞바다)를 기준으로 동쪽 바다에선 조업할 수 없다.

업종별 조업금지구역. 쌍끌이대형저인망은 경도 기준 동경 128도 동쪽에서 조업할 수 없다. 통영해양경찰서 제공 업종별 조업금지구역. 쌍끌이대형저인망은 경도 기준 동경 128도 동쪽에서 조업할 수 없다. 통영해양경찰서 제공

해진호 선단은 사고 전날 오후 5시 10분께 통영항을 출항했다. 그런데 2시간여가 지난 오후 7시 30분께 침몰 지점 인근에서 GPS 항적이 사라졌다. 해경은 고의로 위치발신장치를 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실제 102해진호 침몰 이틀 뒤인 16일 오전 0시 52분, 욕지도 남서방 약 10해리(약 19km) 해상에서 정어리를 잡던 70t급 부산 선적 쌍끌이대형저인망 선단이 해경에 적발됐다. 이 선단 역시 조업구역위반을 숨기려 선박입출항자동신고장치(V-PASS)와 자동선박식별장치(AIS)를 끈 채 조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정석 수사과장은 “생존한 외국인들이 조업 구역과 작업 장소가 어딘지 전혀 알지 못해 불법 조업 여부는 당장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라면서도 “명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상 자료와 선박항적 등을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해경의 계속된 집중 수색에도 실종된 기관장 행방은 사고 발생 닷새가 되도록 오리무중이다. 지난 8일 욕지도 남쪽 37해리(약 68km) 해상에서 전복된 제2해신호 실종 선원 5명 역시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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