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ELS 여파… 고위험상품 은행 판매 금지될까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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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판매 제한 등 개선안 발표 임박
전문성 강화 위한 판매 채널 제한 거론
과도한 영업 목표 개선 목소리도 제기
배상안 수용 시엔 은행 수익 악화 전망

지난 15일 오후 서울 중구 농협은행 본사 앞에서 열린 ‘대국민 금융 사기 규탄 집회’에서 홍콩ELS 피해자들이 깃발을 들고 은행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중구 농협은행 본사 앞에서 열린 ‘대국민 금융 사기 규탄 집회’에서 홍콩ELS 피해자들이 깃발을 들고 은행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대규모 원금 손실 사태를 불러온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를 계기로 금융당국이 은행의 고난도 금융상품 판매 제한 등을 포함한 여러 대책을 강구하고 나섰다. 원금 보장 성격이 강한 은행에서 고위험 상품을 판매하는 것 자체를 막아 피해를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의 현장검사 결과를 공유받고 현재 은행권의 고위험 투자상품 판매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다. 금융위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최종안을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몇 년 새 키코(KIKO),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DLF) 사태 등 유사 사건이 지속해서 발생하는 만큼 제도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지난 12일 서울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신속 신용회복지원 행사 뒤 기자들과 만나 “금감원에서 ELS 사태 원인을 정밀하게 분석·조사해 그 결과가 어느 정도 나왔다”며 “그 내용에 따라서 제도 개선을 준비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관계기관 의견을 수렴한 뒤 제도 개선 방안을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당국은 고위험 상품 판매와 관련한 내부통제 강화와 불완전판매 근절 등을 위한 절차 등을 제도 개선안의 핵심 포인트로 잡고 있다. 먼저 고위험 금융상품의 판매 금지가 유력한 시나리오로 검토되고 있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 2019년 은행에서 원금 20% 이상 손실 위험이 있는 고위험 사모펀드 등의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허용한 ELS에서 사태가 발생한 만큼 고위험 판매 상품의 범위 재검토와 판매 규율 등을 원점에서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고위험 상품 판매를 금지를 할 경우 소비자의 선택권과 접근성이 제한될 수 있다는 불편도 있을 수 있다.

또한 판매 채널을 제한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상당 규모 자산과 금융 이해도가 높은 고객만 이용할 수 있도록 자산관리(WM) 전문지점 등에서만 고위험 금융상품을 판매하도록 하는 것이다. 복잡한 고위험 금융상품의 경우 은행 창구 직원들도 이해하지 못하고 판매하는 이른바 ‘불완전판매’가 발생하는 만큼 전문성을 강화하자는 차원이다.

아울러 은행 차원에서 근본적인 시스템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 금감원 현장 검사에서는 투자자 손실 위험이 확대되는 가운데 영업목표를 과도하게 높게 설정하거나 성과지표(KPI)로 연계해 판매를 독려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은행의 단기 성과주의를 방지할 수 있도록 고객의 손해가 커질수록 낮은 점수가 부여되는 방식 등 제도를 손질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을 보완하는 방안도 있다. 금소법 6대 판매원칙 중 적합성과 적정성 원칙이 모호해 판매사가 자의석 해석을 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이를 보다 명확하게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 일부 판매사들은 투자자 성향 분석을 부실하게 해 원금 보존을 희망하는 고객에게도 ELS 상품을 판매하도록 적합성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이 마련한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분쟁조정 기준안(배상안)을 은행권이 수용할 경우 올해 영업이익이 30% 넘게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은행권은 고금리, 고물가에 따른 연체율 상승과 금융당국의 상생 금융 압박이라는 ‘이중고’ 속에 자산 건전성과 수익성 악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편 홍콩ELS 사태로 국내 은행권의 경영 상황이 악화될 것이란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피치는 13일 발간한 ‘정부의 ELS 배상압박으로 은행권 이익이 역풍을 맞았다’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홍콩H지수 ELS 투자자에 대한 평균 배상비율이 40%로 산정되면 올해 국내 은행들의 영업이익이 최소 6%에서 최대 34%까지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앞서 무디스도 국내 은행 시스템의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한 바 있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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