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극단적 선택'의 퇴장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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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게노 효과’는 자살 예방의 필요성을 강조할 때 쓰인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새잡이로 나오는 파파게노의 절망과 희망에서 유래했다. 파파게노는 사랑하는 연인 파파게나가 사라지자 낙심한 나머지 죽기로 작정한다. 이때 요정들이 나타나 희망찬 노래로 용기를 북돋아 주자 자살 대신 종을 울려 파파게나와 만나게 된다. 둘이 만나 사랑을 확인하며 부르는 아리아가 ‘파~, 파~, 파~, 파~’로 유명한 이중창인데, 가사를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아들, 딸 순풍순풍 낳고 잘 살자’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극적인 반전인 셈이다.

자살률 관련, 한국은 불명예스러운 세계 1위다. 한국 자살률은 1998년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한 이후 내려올 줄을 모른다. 세계 최저 기록을 해마다 경신하는 출산율과 함께 세계 최고의 자살률 지표는 한국인이 겪고 있는 팍팍한 삶의 무게를 드러낸다. 핀란드나 일본이 과거 자살률 상위 국가였지만 국가 차원의 노력으로 낮아졌는데 한국 지표는 요지부동이다. 지난해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는 ‘자살 위기 극복 특위’를 가동하고, 예방과 대응 체계 등의 과제를 제시했다. 또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범주화할 가능성을 들어 ‘극단적 선택’ 표현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언론은 ‘자살’이라는 단어의 대안으로 ‘극단적 선택’을 사용해 왔다. 문제는 완곡어법이 시간이 지나면서 직설적으로 받아들여져 유의어처럼 된 데 있다. 신문 자율 규제 기구인 신문윤리위원회는 기존 입장을 바꿔 ‘극단적 선택’을 쓸 경우 3월부터 신문윤리강령 위반으로 제재하기로 했다. 자살 보도를 가급적 자제하되, 굳이 보도하려면 ‘숨졌다’, ‘사망했다’로 쓰라는 것이다. 신문윤리위원회는 ‘선택’이라는 표현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취할 수 있는 대안 중의 하나라는 잘못된 메시지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고 부연한다. 심신 미약 상태에서의 행동을 온전한 의사 표시로 묘사하는 것도 잘못됐다는 의미다.

미국 예일대 정신과 나종호 교수는 방송을 통해 자살에 대한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적인 책임의 맥락으로 보자는 화두를 던진 것이다. 그는 주변에 고통받는 이들이 보이면 “옆을 지켜 주고, 마음을 읽어 주라”고 조언한다. 나아가 “정말 걱정이 된다면 자살을 생각하는지 직접 물어보는 게 좋다”고 한다. 극단적 고립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나눈다. 주변의 인지와 도움이 생명을 지킬 수 있다. 혹시 내 곁에 홀로 괴로워하는 ‘파파게노’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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