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잔술 판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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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복판에 미닫이 출입문을 한 ‘점빵’에는 무시로 술꾼들이 들락거렸다. 일하다 말고 마른 목을 축이려는 이도 있었지만 그냥 입이 궁금해 오는 축도 있었다. 가게 한쪽에 마련된 쟁반에는 오종종한 술잔들이 놓였고 그 옆에는 종이를 뭉쳐 입구를 막아 놓은 소주병이나 막걸릿병이 있었다. 술꾼들은 술잔에 소주나 막걸리를 가득 부어 단숨에 들이켜고는 엄지와 검지로 소금을 집어 입안으로 톡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입을 몇 번 다신 뒤 동전을 쟁반에 두고 나갔다. 1960, 70년대 동네 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잔술의 풍경이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시골 동네의 구멍가게에서는 이런 잔술이 술꾼들의 주기(酒飢)를 달래주었고 도시에서는 대폿집이 그 비슷한 역할을 했다. 진미의 안주를 시켜 놓고 걸판지게 마실 처지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포 한 잔 또는 잔술로 시름을 달랬다. 대폿집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서민들이 큰 부담 없이 한 잔 술로 목을 축일 수 있었던 곳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술을 마시다 역시 혼자 술을 마시는 옆 테이블의 전혀 모르는 사람과도 쉽게 동석할 수 있었던 곳이 대폿집이었다. 동네에서 잔술을 파는 구멍가게나 대폿집은 이후 보다 세련된 형태의 주점이나 호프집 등이 등장하고 입맛마저 변하면서 점점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은 그런 가게가 있었는지조차 모를 지경이 됐다. 덩달아 ‘잔술’이라는 말도 사라졌다. 가격이 싼 소주 또는 막걸리를 병이 아닌 잔 단위로 팔았다는 사실을 요즘엔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르면 다음 달부터 시중에 다시 소주나 막걸리 잔술이 등장할 모양이다. 정부가 관련 법률을 바꿔 잔술 판매 행위를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칵테일과 생맥주 외에 와인, 위스키 등 모든 잔술 판매를 불법으로 볼 여지가 있었던 기존 법령의 허점을 보완했다. 주류 업계는 새로운 판매 채널과 시장 확대를 기대하며 반기는 모습이다.

반면 소비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음주 경비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술잔의 위생 문제와 남은 술의 재사용 우려 등을 들어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도 강하다. 어쨌든 모든 잔술 판매가 허용된다고 하니 예전 가난한 술꾼들의 사랑을 받았던 잔술이 바뀐 세태에는 어떤 대접을 받을지 궁금해진다. 거기다 “소주 딱 한 잔만 하고 가자”라는 유혹이 말 그대로 실행되는 일이 늘어날지도 두고 볼 일이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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