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당할미께 허락을 구하나이다”…지속가능 농업 씨 뿌리는 ‘퍼머컬처’ 부산서 시농제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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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속 생태적 삶 추구
청년 40여 명 지역서 활동 중
1년 농사 시작하며 풍년 기원
금정구 남산동 텃밭서 행사

퍼머컬처네트워크 부산지부 시농제가 24일 오후 부산 금정구 남산동 텃밭에서 열려 참가자들이 오프닝 세러머니를 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퍼머컬처네트워크 부산지부 시농제가 24일 오후 부산 금정구 남산동 텃밭에서 열려 참가자들이 오프닝 세러머니를 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금정산 아래에서 ‘퍼머컬처’ 농사를 시작하며 하늘과 땅, 고당할미께 허락을 구하나이다.”

퍼머컬처(Permaculture·영속 농업)는 ‘지속가능한 농업’과 일맥상통하는 단어로, 자연의 원리에 따라 생활환경을 구성하고 그 속에서 자급·자립을 추구하는 삶의 양식을 말한다.

24일 오후 2시 금정구 남산동 ‘꿀벌살리 텃밭’. 한 해 농사 시작을 알리고 풍년을 기원하는 시농제가 열렸다. 이날 행사를 위해 모인 20여 명의 퍼머컬처 농부들은 동그랗게 모여 인사를 나누고, 지신밟기를 하듯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밭을 돌았다. 맨발로 땅 위를 걷는 이들도 있었다. 예보됐던 비 소식 대신 텃밭을 방문한 까치가 봄소식을 전했다.

퍼머컬처는 자원 낭비, 생태계 단절, 환경파괴, 기후위기 심화를 부추겨 온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 삶의 모든 분야를 생태친화적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퍼머컬처 네트워크는 2022년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비영리 민간단체로 지정됐다. 전국적으로 200여 명, 부산지부엔 4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시농제를 위해 각지에서 모인 퍼머컬처네트워크 회원들 사이에선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청년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환경에 대해 공부하고 생태적 삶을 지향하며 지난해 4월부터 금정구 남산동 ‘살리는사람들 살리’ 4층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퍼머컬처네트워크 부산지부 대표활동가 이지현(30) 씨는 “퍼머컬처를 알게 되고 같은 뜻을 가진 청년들과 함께 살며 자연과 사람을 돌보는 삶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퍼머컬처 농부들은 밭을 돌며 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은 허브, 쪽파 등 작물 상태를 점검하고 맛봤다. ‘꿀벌살리 텃밭’엔 허브와 나무 55종 이상이 식재돼있다. 90% 이상이 자연의 시간을 따라 인위적으로 씨앗을 뿌리지 않고 성장하는 다년생 작물으로, 퍼머컬처 농부들은 인위적으로 씨앗을 뿌리지 않고 봄이 되면 올라오는 다양한 새싹을 마주한다. 이들은 “내가 키운 작물 외에 스스로 자란 식물들도 존중해야 한다”며 밭을 찾아온 모든 생명을 살폈다.

음악에 맞춰 간단한 ‘서클댄스’를 추기도 했다. 첫 번째 곡은 서로를 신성한 존재로 본다는 의미를 담은 곡으로 자연 일부가 돼 섬김을 주고받는다는 의미를 담았다. 두 번째 곡은 하와이 언어로 된 곡으로 신성한 땅을 함께 지키자는 내용을 주제로 한다.

시농제가 시작되자 이들은 축문을 읽고 길놀이 풍물과 ‘푸른 정령들’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푸른 정령들은 2019년 런던 멸종 저항 시위 거리 공연에서 시작된 국제행동이다. 푸른 정령은 바다에 깃들어 사는 모든 생명을 뜻한다. 이들은 “20여 명의 기후 농부가 농사를 시작한다”는 말과 함께 풍물 장단에 맞춰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고 강강술래, 청어엮기 놀이 등 전통 놀이를 함께했다.

퍼머컬처네트워크 부산지부 장준영 활동가는 “올해 겨울만 하더라도 꿀벌들이 하우스에서도 겨울을 나지 못 할 만큼 이상기후가 심했다”며 “도심 빈 공간에서 이웃과 함께 텃밭을 가꿔 탄소를 다시 원래 있던 흙 속으로 돌려보내고, 스스로 먹거리를 만들어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일에 많은 이들이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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