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경험이 과거의 기억을 변화시킨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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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화랑, 배남주 ‘가변기억’전
사진 기반으로 페인팅 작업
과거와 현재 상호작용 표현

배남주 ‘가변기억’. 맥화랑 제공 배남주 ‘가변기억’. 맥화랑 제공

예전 어떤 모임에서 예술의 존재 이유에 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위로, 힐링, 재미라는 단어가 나왔고 자극, 기억, 회상이라는 말도 이어졌다. 맥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배남주 작가의 ‘가변기억’ 전시를 보며 앞서 나온 단어의 감정을 골고루 느낄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20여 년, 부산에서 꾸준히 작업해 온 작가는 이제 자기만의 스타일과 개념을 인정받는 중견으로 자리 잡았다. 시장의 트렌드나 소비자의 취향에 맞춘 작업이 아니라 자기만의 방향성을 가지고 깊이 있는 작업을 유지해 왔다. 부산의 대표화랑 중 하나인 맥화랑이 올해 시작한 ‘맥화랑 포커스’ 기획의 첫 주자로 선택된 이유이기도 하다.

“중간 세계, 사이 공간에 매료돼 그 불확실한 세계를 회화로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행복과 불행, 죽음과 탄생, 안과 밖, 빛과 어둠, 현실과 이상의 중간 다시 말하자면 명확하게 정의될 수 없는 그 사이 공간을 캔버스에 그렸습니다. 누군가는 울창한 숲처럼 보인다고 했고 누군가는 판타지 세계같다고 했죠.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너무 좋더라고요.”

뭐든 빠르게 결론 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누구 편인지 확실히 표현하라고 요구하는 세계에서 배 작가의 중간 세계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배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편안해진다고 했고, 거기로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 수채화처럼 맑게 그려내는 화법 역시 배 작가 작품의 매력 요소 중 하나였다. 한 번도 시장과 판매를 고려하고 작업해 본 적이 없지만, 배 작가의 작품은 아트페어와 갤러리에서 팬들을 끌어들일 만큼 명성을 얻기도 했다.

4년 만에 돌아온 이번 개인전에서 배 작가는 작업 방식과 주제 해석을 좀 더 확장했다. 이전 천착했던 ‘불확실성’ ‘중간 세계’를 바탕으로 발전시켰다.


배남주 ‘가변기억’. 맥화랑 제공 배남주 ‘가변기억’. 맥화랑 제공

배남주 ‘가변기억’. 맥화랑 제공 배남주 ‘가변기억’. 맥화랑 제공

전시 제목인 ‘가변 기억’은 우리가 인지하는 세계 역시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경험이 우리의 기억을 변형시키고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과거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캔버스(혹은 종이)에 붙여 이미지를 전사시키면, 사진을 떼며 예상치 못하게 사라지는 부분이 있다. 작가는 흐려진 이미지 위에 물감을 뿌리거나 나이프로 긁으며 변형시킨다. 우리의 기억이 현재의 경험으로 변형되는 걸 의미한다.


배남주 ‘망각’. 맥화랑 제공 배남주 ‘망각’. 맥화랑 제공

작가가 선택한 화법은 결과를 예측하거나 완벽히 의도대로 나오지 않는다. 작가는 오히려 그럼 점때문에 이번 작업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작가가 선택한 이미지에도 비밀이 숨어 있다. 이전 작품처럼 이번에도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가 돋보인다. 배 작가가 핸드폰에 담긴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에서 이미지를 가져왔다고 설명한다.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야생화거나 담벼락 아래 풀이다.

“사진의 일부분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크게 확대해 봅니다. 그럼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로 보이게 되죠. 사실은 흔히 본 장면들이거든요. 가변 기억이라는 개념과 연결됩니다.”


맥화랑 ‘가변기억’ 전시에서 만난 배남주 작가. 김효정 기자 맥화랑 ‘가변기억’ 전시에서 만난 배남주 작가. 김효정 기자

작가에게 작업을 안 할 때는 무얼 하는지 물었다. 자신이 그린 작품들을 한참 쳐다보는 게 취미라고 말한다. 작자로서가 아니라 감상자로서 그림과 떨어져 그림을 보는 것도 무척 행복하다고 한다. 그리고 감상하고 그렇게 하루가 꽉 찬다. 배 작가는 천생 예술가구나, 싶다. 이번 전시는 4월 5일까지 열린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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