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파의 생각+] 선거 후 폐현수막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공모 칼럼니스트

선거가 끝나기를 학수고대했다. 아파트 진출입로에 선거홍보 현수막이 수없이 많이 걸려 있어서 운전할 때 지나가는 보행자와 마주 오는 자동차가 잘 안 보였기 때문이다. 선거날 아침 투표를 하고 나오며 ‘이제 내일이면 현수막이 사라지려나’ 기대했건만 어느새 당선감사 인사와 결과승복 현수막이 선거홍보 현수막이 있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원망스러운 눈으로 현수막을 바라보다 문득 이 많은 선거 현수막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선거 현수막의 처리 과정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선 선거철에 폐현수막이 어느 정도 발생되는지를 알아보았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약 260만 장, 1557톤에 달하는 현수막이 수거되었고, 2018~2022년 5년간 선거철에 발생한 폐현수막은 1만 3985톤에 이른다. 특히 올해는 정당 현수막 관리를 강화하는 옥외광고물법이 시행됨에 따라 폐현수막이 더욱 급증할 것이라고 한다.

해마다 수천 톤, 처리 땐 환경 오염

재활용도 어려워 해결책 마련 시급

입법 통해 선거홍보 현수막 규제하길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이처럼 많은 폐현수막이 발생하고 있는데 폐현수막은 과연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까. 환경부에 따르면 2022년 대선 기간 발생한 폐현수막 가운데 50.5%는 소각, 24.9%는 매립, 24.6%는 재활용되었다. 여기서 문제는 현수막을 소각하거나 매립할 때 환경이 심각하게 오염된다는 사실이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에 따르면 현수막 1장을 처리할 때 온실가스 6.28kg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는 25년 된 소나무 한 그루가 1년 동안 흡수하는 탄소량과 같다. 만약 이번 총선에서 발생한 폐현수막이 지난 지방선거와 동일하다고 가정한다면, 선거 후 소각 과정에서 약 8164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되게 된다. 매립 역시 환경을 오염시킨다. 현수막은 대체로 플라스틱 합성수지로 제작되는데 이러한 성분은 매립을 해도 분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폐현수막 재활용을 늘리기 위해 폐현수막 재활용 지원사업을 추진한다고 한다. 행정안전부는 지자체에서 수거한 현수막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총 15억 원의 사업비를 지급할 계획이며, 환경부는 폐현수막 새활용(upcycling) 기업과 폐현수막으로 제작 가능한 물품 목록, 생산 일정 등을 안내하여 지자체와 기업 간 연계를 도울 예정이다. 이를 통해 환경오염을 줄이고, 사회적 약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폐현수막 재활용의 취지는 좋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곧 환경오염을 줄이는 올바른 해법이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일단 재활용 가능한 현수막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 현수막의 경우 후보자 얼굴 및 비방용 문구 등이 인쇄되어 재활용이 쉽지 않다. 그리고 거리에 오랜 시간 걸려 있어 오염이 되거나 훼손된 것이 대부분이어서 재활용 가능한 현수막을 찾기가 힘들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재활용 가능한 폐현수막을 선별하여 재활용한다고 하더라도 현수막 원단 및 잉크가 화학제품이므로 생활용품으로 재활용할 경우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 또 재활용품의 디자인과 질이 좋지 않아 장바구니와 같은 폐현수막 재활용 제품을 무료로 제공해도 사람들이 가져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다소 거칠게 비유하자면 폐현수막 재활용은 하나의 쓰레기를 또 다른 모양의 쓰레기로 가공하는 것과 다름없다.

결국 폐현수막 재활용은 이른바 ‘플라스틱 좀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 재활용을 면죄부 삼아 더 많은 현수막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눈앞의 문제에 대한 근시안적 대책 마련이 아니라 문제의 발생 원인을 살펴 근본적 방지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먼저 환경오염이 문제이므로 환경오염을 발생시키지 않는 친환경 현수막을 사용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가령 옥수수 전분이나 사탕수수에서 실을 뽑아 만든 식물성 원단으로 현수막을 제작하면, 매립 후 6개월이면 생분해가 되어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방법은 선거홍보에서 현수막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도시미관을 해치고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현수막 대신 영구적 사용이 가능한 디지털 현수막을 도입하거나 독일과 같이 선거부스를 활용하여 홍보하면 어떨까.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선거문화 풍토에서 각 정당이 자율적으로 이러한 방안을 실행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정당 스스로 입법을 통해 선거홍보 현수막 규제 방안을 만들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여야 모두 총선에서 탄소중립에 한목소리를 낸 만큼 22대 국회의 기후환경 분야 1호 법안으로 선거홍보 현수막 금지법이 발의되길 소망해 본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