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영혼의 쉼터] ③ 아름다운 성당 강원도 대화성당
단아한 성예술품… 안온한 경건미…

"대화성당요?
길 가에 있는 조그만 성당?
대화리에서 차 타고 지나가다 봤는데,
특이하더군요.
한 번 구경 가 봐야겠다 하고 있는데…."
강원도 평창군 횡계리에서 한 주민에게
대화성당 가는 길을 묻는다.
주민은 몽롱한 눈빛으로
자신의 느낌을 들려주는데,
왠지 말투에 성당에 대한
애정이 묻어 있는 듯하다.
평창군 대화면 대화리 대화성당.
천주교 원주교구 산하 성당 가운데서는
세 번째로 역사가 오래된 성당이지만
지금의 모습이 갖추어 진 건 1998년이다.
외부에는 기도하는 공간으로서는
물론, 미적인 관광의 공간으로서도
손색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수준 높은 성미술품들이 성당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풍문을 따라 이곳으로 흘러드는 사람들이 상당한 수에 이르고, 주일 미사 때는 다른 지역에서 온 신자들의 수가 늘 40,50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그리하여, 우리도 풍문처럼 대화리로 스며든다.
신리쪽에서 넘어와 대화리 이정표를 확인한 다음 왕복 2차선 도로로 접어든다. 도로 양편으로 고즈넉한 산골마을이 늘어선다. 산의 고장 강원도 답게 산들이 집들 앞으로 바짝 다가와 앉아 있다. 주민들은 고랭지채소와 감자 따위를 키워 팔아서 자식 공부를 시킨다고 한다.
1분 남짓 앞으로 나아가자 왼편으로 장승 혹은 솟대를 연상시키는 간판이 나타난다. 노란색 브론즈판 위에 '대화성당'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조각가 서보원이 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성당 안내를 맡은 것 부터가 미술품이다. 성당은 불쑥 솟아 있지 않고, 땅을 향해 낮게 엎드려 있어서 놓치고 지나가기 십상이다. 성당은 얼핏 보면 단아한 양옥집같아 보인다. 브론즈 간판이 아니라면 그대로 지나칠 수도 있겠다.
붉은색 벽돌담은 어른 가슴 정도 높이밖에 안된다. 오래된 흙담의 이미지와 철학을 원용한 듯,담 너머로 잔디가 깔린 마당과 성당 건물이 오롯이 다 보인다.
흰색 철제 대문은 담보다 더 낮고, 활짝 열려 있다. 초가집의 사립문같은 느낌을 준다. 조각가 최태훈의 작품이다. 대문 앞에 서 보니 왼편에서부터 사무실→'작은 꽃 피정의 집'→사제관→성당 순으로 건물이 배치돼 있다. 성당은 아담한 편이다. 마당까지 다 합쳐서 전체 규모는 300평 정도라고 한다.
성당 안에 들어서자마자 성미술품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현관에서 마주치는 하얀 대리석 성수대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기하학적으로 단순화 된 인물이 성수반을 받치고 있고, 정면에는 도자기 파편(陶片)으로 만든 벽과 십자가가 있다.
지금부터 성당의 분위기와 미술품의 의미와 내력 따위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야겠다. 성 미술품 제작은 도예가 변승훈, 화가 김남용, 조각가 한진섭, 이 세 사람이 주도했다.
·도자기의 벽 - 변승훈
현관을 지나 성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당신은 이내 환상적인 분위기에 젖어들게 될 것이다. 변승훈의 혼과 땀이 깃든 사방의 '분청 모자이크 벽' 때문이다. 변승훈은 분청자기를 선호하는 도예가이다. 변승훈은 7t이나 되는 흙으로 2천300장의 분청 도판을 구운 다음 다시 도판을 일일이 깨뜨려 접착제를 사용해 도편들을 벽에 붙였다. 만져 보니 벽의 질감은 매끄럽고 까칠하다.
당시 남녀노소가 모두 변승훈의 지휘를 받아 도편 부착작업에 참여했다. 성당 선교사회복지분과에서 일하는 정운천(베드로)씨는 "본당이 평창군청 소재지로 옮겨가는 바람에 대화성당은 한동안 공소로 남아 있었고, 지난 93년에야 비로소 본당으로 승격됐다"면서 "신자들이 산나물 뜯고 해서 성당 신축 기금 마련하려는 분위기 속에서 외지의 성금이 답지하는 가운데 예술 성당이 들어선다고 하니,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을 도왔다"고 회상했다.
예술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압권은 초현실적 분위기를 풍기는 뒷벽이다. 뒷벽에는 '골고타 언덕의 세 십자가'가 묘사돼 있다. 한가운데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못박혔던 것이고, 양 옆의 십자가들은 두 강도의 것이다. 십자가들은 서로 맞물려 있다. 용서와 화해를 뜻하는 듯하다.
뒷벽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십자가 저 너머로 문득 은하수가 흘러가는 듯하기도 하고, 성령이 눈처럼 소복소복 쌓이거나 민들레 꽃씨처럼 흩날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정면 벽은 뒷벽과는 좀 다르다. 뒷벽에는 여러 색깔이 뒤섞여 있지만 정면 벽에는 흰색뿐이다. 신자들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따뜻한 돌 - 한진섭
대화성당의 정면 벽 앞에 놓인 제대와 감실(성체를 모셔두는 방),독서대 그리고 미사 도중에 신부가 앉는 의자는 붉은색 화강석 재질의 미술품이다. 중앙의 제대는 고인돌을 닮은 듯하기도 하다. 이런 돌로 된 제대 따위들을 보고 있으니 야훼에게 양을 잡아 바치던 저 구약시대 유대민족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한진섭이 돌로 만든 이들 성미술품들은 차가운 재질의 돌한테서 원만함과 따뜻함이 느껴진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번에는 검은색 화강석 재질의 성미술품이다. 제대 오른쪽에 배치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십자고상:十字苦像)'과 '십자가의 길(14처)'이다. 십자고상은 제대 중앙이 아니라 약간 오른쪽으로 물러나 있다. 통례를 벗어난 것인데, 덕분에 정면 전체가 시원해 졌다. 십가가에 못박힌 예수의 얼굴은 마침내 고통이 마무리 된 듯 둥글고, 무표정하다. 보는 이의 심리상태에 따라 표정이 규정되는 표정이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가 십자가형을 언도받은 직후부터 무덤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14개의 장면에 나누어 담은 것이다. 흔히 말하는 '14처'다.
14처의 예수의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없고 사건은 단순화 돼 있다. 한진섭의 다른 돌 미술품들이 다 그렇듯이 분위기가 소박하다. 제1처는 사형선고를 받은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 예수는 두 손으로 두 볼을 감싸고 있다. 인간적인 고뇌가 읽힌다. "예수께서 사형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2처의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있고, 12처의 예수는 두 손등과 두 발등에 대못이 박힌 채 십자가에 못박혀 있다.
경기도 분당 요한 성당에서 피정온 대학생 한 무리가 14처를 돌면서 기도를 하고 있다. 성당의 안온한 분위기가 이들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성령을 끌어들이는 유리화 - 김남용
도자기의 벽과 화강석의 제구들이 성당을 신비롭고 안온하게 만든다면, 성당의 유리화(스테인드 글라스)는 그런 분위기를 마무리 짓는 성미술품이라고 할 수 있다. 김남용의 유리화를 보고 있으면, 나체의 빛들이 성당 안으로 스며들어 오면서 은은한 옷을 걸치는 듯한 착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이 유리화들의 이름은 '온 누리에 가득한 성령'이다.
바깥 세상과 성당 안의 경계를 긋는 듯 마는 듯한 이 유리화가 없었다면 성당 안의 분위기가 자못 삭막할 뻔했다. 유리화 안에는 연한 하늘색과 연한 녹색의 다각형이 들어있는데, 도벽의 다각형 도편들과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당 밖으로 나오니 담 너머로 바깥 풍경이 펼쳐진다. 어깨를 맞댄 단층 집들이 보이고, 전신주가 보이고, 산이 보이고, 차들이 보인다. 오래된 옛집의 툇마루 앞에 서 보면 풍경이 집 안으로 걸어들어 오는 듯한데,대화성당 역시 바깥 풍경들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성당을 나선 우리는 브론즈 간판의 배웅을 받으며 귀로에 올랐는데, 분청 도벽과 따뜻하고 원만한 돌들과 은은한 유리화의 질감은 오랫동안 우리를 따라왔다. 천주교 원주교구가 늘 성당의 분위기와 의미에 걸맞는 신부를 파견하고,지방자치단체가 홍보와 보호에 신경을 써서,영혼들이 기운을 얻어가는 공간으로서 대화성당이 부디 만수무강 하기를.
글·사진=이광우기자 leekw@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