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 잡] 은행 금고 털다 정치 스캔들 휩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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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추적자 두뇌게임 그린 '영국산 범죄액션물'

은행털이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곤 재미난 영화적 소재인가 보다. 비슷한 작품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이 분야의 고전은 아무래도 게리 그레이 감독이 연출한 '이탈리안 잡'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금고, 컴퓨터, 자동차, 폭약 등 최고 전문가들이 뭉쳐 은행을 턴다는 이야기인데 40년이 넘는 세월에도 영화팬들 사이에서 여전히 회자되기 때문. 한국영화로는 중앙은행에서 50억원을 교묘하게 훔쳐내는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이 단연 돋보인다.

30일 선보인 영국산 범죄액션물 '뱅크 잡'도 은행털이 이야기를 주섬주섬 담아내고 있다. 70년대 영국 로이드 은행의 개인 금고 털이를 감행한 테리라는 주인공과 그 일당들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 어쩌면 '흘러간 유행가' 수준처럼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인 영화처럼 다가오지만 '뱅크 잡'은 의외로 밀도있고 치밀하게 버무려졌다. 단지 돈이었지만 금고를 터는 과정에서 원치 않았던 정치 스캔들에 휩쓸리게 되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

런던의 한 클럽. 에디(마이클 집슨)의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어릴 적 친구들이 모였다. 중고차 매매상인 전과자 테리(제이슨 스테이덤), 한때 모델로 활동하던 매력적인 여자 마틴(샤프론 버로우즈), 포르노 배우 데이브(대니얼 메이즈), 사진작가 케빈(스티븐 캠벨 무어)이다.

평범한 총각파티인 것 같지만 사실 이들은 은행을 털기로 결심한다. 일을 제안한 사람은 마틴. 1주일간 영국 한 은행의 자동경보기가 멈춘다는 소식을 테리에게 전해주며 은행 강도를 제안하자 테리와 친구들이 받아들인 것. 이들은 은행 옆 가게를 빌리고 지하로 구멍을 뚫어 금고를 털자고 뜻을 모은다. 터널파기 전문가와 가게를 빌릴 양복점 재단사가 일행에 합류하자 이들은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데….

이 작품은 1971년 런던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당시 피해를 입은 많은 부자들 중 상당수는 자신들이 맡겼던 물건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 분실품 확인 절차조차 밟지 않았고 이후 사건의 실체는 영국 정부에 의해 기밀로 분류되며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영화적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터널을 파서 은행을 턴다는 설정까지는 '웰컴 투 콜린우드'와 비슷하고 여러 인물이 완전범죄를 꿈꾸는 것은 '오션스 일레븐'을 연상시키지만 사실 본격적인 줄거리는 이들이 은행을 턴 다음 시작된다.

400만파운드와 함께 이들은 은행의 개인금고에서 예상치 못한 물건들을 발견해 수중에 넣은 것. 여기에는 정관계 유명인사들의 성추문 사진이 숨겨져 있고, 부패한 경찰의 상납 내역을 담은 매춘조직의 장부까지 들어 있었던 것.

이쯤 되니 영국의 정보기관인 MI5나 범죄 조직이 뒤를 쫓기 시작하고 범행 당시 무전기를 통해 나누던 이들의 대화가 한 무선통신사에 의해 우연히 녹음돼 언론에 공개되자 일행은 점점 궁지에 몰린다. 그래서 강도와 이들을 쫓는 무리들의 두뇌게임은 개인금고 안에 있는 추악한 비밀을 둘러싸고 날줄과 씨줄처럼 엮인다. 촘촘한 줄거리는 꽤 긴장감이 높고 여러 캐릭터의 묘사나 각 배우의 연기 역시 탄탄하다. '노 웨이 아웃' '겟 어웨이' 등 흥행작을 연출한 로저 도널드슨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김호일 선임기자 tokm@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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