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적 모습 배후엔 그 사람의 본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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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초상화 - 형(形)과 영(影)의 예술/ 조선미

'일호불사 편시타인'(一毫不似 便是他人). 터럭 한 올이라도 틀리면 그 사람이 아니다! 우리 옛 초상화가들의 마음가짐은 그랬다. 초상화를 그릴 때 털끝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아주 핍진하게 그려야 한다는 일종의 좌우명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특정 인물을 그려 낼 때
외형을 바로 포착하면
자연스럽게
그 내면은 그림에 나타나



성균관대 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조선미 성균관대 예술학부 교수가 그렇게 그려진 한국의 옛 초상화들 중 엄선한 74점을 소개하는 책 '한국의 초상화-형(形)과 영(影)의 예술'(조선미 지음/돌베개/4만5천원)을 내놓았다.

형(形)과 영(影)의 예술이라? 무슨 의미인가 했더니 서문에서 친절하게 설명해 놓았다. "형이란 그려지는 대상 인물 그 자체이며, 영이란 그려진 초상화다. 인간의 외적 모습(형)의 배후에는 그 사람만이 가진 불변의 본질 즉 정신이나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하여 화가가 어떤 특정 인물을 그려낼 때 형을 올바로 포착해 낸다면 자연스레 정신이나 마음같은 내적 요소 역시 화면 위로 끌어 올려져 영으로 비추어 진다."

실제로 그러한가? 조 교수는 왕, 사대부, 공신, 기로, 여인, 승려 등 여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 각각의 초상화들을 들며 그런 주장의 근거를 제시한다.

왕 가운데는 영조의 초상화가 흥미롭다. 조 교수는 영조가 등극하기 전 연잉군으로 있을 때 초상화와 등극 후 51세 때의 초상화를 비교할 수 있게 배치해 놓았다. '터럭 하나도 틀리게 그려서는 안되는' 만큼 두 초상화는 한눈에 봐도 한 사람의 젊고 늙었을 때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연잉군 때 영조의 모습은 무언가 우울하고 패기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영조는 궁중 최하급직인 무수리 신분의 어머니를 두어 신분이 늘 불안했고, 특히나 그의 왕자 시절에는 자신을 지지하는 노론과 반대하는 소론의 암투가 치열했던 때였다. 그 같은 배경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반면 왕위에 오른 후 영조의 모습은 눈빛이 한층 매서워 졌고 얼굴색도 정력적이다. 단호하면서도 자신감 충만한 권위적 인상으로 바뀐 것이다. 자기를 둘러 싼 배경의 변화가 사람의 기색까지 바꿔 놓은 것이다.

조선 말의 우국지사 매천 황현의 초상화는 그가 55세 때 찍은 흑백 사진과 비교해 놓았다. 사진과 초상화의 모습은 얼굴 각도, 사팔눈 등 대부분 동일하다. 그러나 사진 속 황현은 전체적으로 옹색하고 답답하다. 그에 비해 초상화 속 황현은 유학자의 풍도를 한껏 보여준다. 의연하고 정갈한 모습이다. 국망의 아픔에 자결로 저항했던 선비의 올곧은 정신이 그대로 배어난다.

형을 그대로 찍어낸다는 사진조차 미처 보여주지 못하는 사람의 내면(영)을 초상화는 온전히 보여줬던 것이다. 조 교수는 초상화의 그런 측면을 예술성이라 부른다.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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