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 함께 행복찾기] 사랑이란 이름의 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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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패륜사건이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지 모 군은 "서울대 법대를 가야 한다" "전국 1등을 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강요에 시달렸다. 지 군 어머니는 고1 때는 성적이 1등급에서 떨어지자 야구방망이, 골프채로 때리고, 잠도 재우지 않고, 밥까지 굶겼다. 이러한 어머니가 무서워 성적표를 위조했고, 들킬까 봐 어머니를 살해한 뒤 시신을 8개월간 안방에 둔 채 수능까지 보았다.

왜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까? 남편과 별거 중인 어머니는 아들의 성공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지 군은 불가능한 목표를 이루도록 강요하는 어머니에게 엄청난 두려움과 적대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자녀가 상처 받으면 '학대'
자식을 소유물로 착각
자신의 꿈 강요 말아야

학업성적을 둘러싼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은 이 사건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0년에는 휴학생 모 씨가 명문대 진학을 요구하는 부모를 토막 살인했고, 2009년에도 한 대학생이 "성적이 나쁘다"며 핀잔을 주는 아버지를 살해한 뒤 시신을 4개월 동안 집에 유기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반대하며 인문계 공부만 강요한 아버지에게 불만을 품은 중2 이 모 군이 집 안에 불을 질러 일가족 4명이 숨지는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에 눈살이 찌푸려지는가? 정도의 차이일 뿐 이런 상황은 주변에서 비일비재하다.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는 자녀 교육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아이에게 가혹행위를 한 아내에게 이혼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했다(2011년 9월). 아내 B 씨는 공부를 잘하는 딸만 편애하고, 공부 못하는 아들을 심하게 나무랐다. '살아봤자 쓰레기이다. 너는 살 필요가 없다 죽어라'라는 식의 폭언을 했다. 아들이 졸았다며 책상을 톱으로 자르고,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 침대매트리스를 세로로 세워 잠을 못 자게 하거나, 굶기기도 했다.

이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가정의 모습을 그려 보자. 엄마의 교육열은 지나치게 높아 남편과 교육관의 차이로 다투기 일쑤이다. 남편이 자녀교육에 무관심하다며 매도를 한다. 아이에게 너무 심하게 한다는 남편의 말은 무시되기 십상이고, 행여 관심을 보이면 '언제부터 애들한테 신경 썼느냐'는 식으로 조롱한다. 남편을 돈 버는 기계로 취급하고, 교육비가 모자라면 돈도 못 번다고 타박한다. 남편도 처음에는 문제를 해결하려 애를 쓰지만 그럴수록 집안만 시끄러워져 포기하고 만다. 결과적으로 남편의 무관심이 자식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꼽히게 되었다.

위의 사건에서 서울가정법원 판사는 엄마의 행동을 사랑이 아닌 학대라고 판결했다. 중요한 것은 그 판결기준이 엄마의 마음이 아니라 자녀의 마음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그로 인해 자녀가 상처를 입었다면 학대라는 것이다. 공부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마음까지 배려해야만 좋은 교육이 시작되는 것이다.

몇 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에서 교육 강연을 했다. 강남, 목동뿐만 아니라 각 도시의 대치동들과 작은 시나 읍 단위까지 다녔다. 놀라운 것은, 기대만큼 아이가 잘 못하면 극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 아이에게 체벌이 가한다는 점이다. 잘사는 부모나 못사는 부모, 학벌이 높든 낮든 예외가 없다. 화가 나면 골프채나 죽도까지 사용하고 닥치는 대로 패기도 한다. 부모는 이런 훈육이 자식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자녀들이 받을 상처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이런 환경하에서 자녀의 자아존중감은 낮아지고 불안 증세가 나올 수밖에 없다. 부부 사이가 나쁠수록, 아버지의 공백이 클수록 엄마는 아이에게 강하게 집착한다.

전국 1등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못 이룬 꿈을 자식에게서 찾으려 하고,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착각하는 부모가 너무나 많다. 이 세상은 판검사, 의사, 교수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 청소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노동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도 있어야 한다. 최고가 되어야 행복해지고, 최고가 아니면 불행할 것이라는 착각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황미용

교육 사이트 아삭(www.asak.co.kr) 운영자.
맘스쿨 창의력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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