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 백년 명가, 숨은 맛을 말한다] <6> '조선(朝鮮) 엿' 만드는 구마모토 '소노다야(園田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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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기에도 욕심 내지 않는 것이 400년 장수 비결

'소노다야' 점포 뒤편에 마련된 공장. 종업원이 찹쌀과 물엿 등을 섞어 졸여 만든 조센아메의 반죽을 나무틀에 옮겨 담고 있다. 손쉬워 보이는 작업이지만 일반인이 만졌다간 손을 데기 십상이다.

전통을 지킬 것인가? 시대의 흐름을 따를 것인가? 많은 노포(老鋪)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물론 모든 경우의 수를 관통하는 하나의 답은 없다. 어떤 가게는 전통을 고수해 지금껏 간판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가게는 부단히 변화를 꾀했기에 지금의 가게가 될 수 있었다고도 말한다. 그리고 또 다른 가게는 지금 그 기로에 서 있기도 하다. 일본 구마모토 현 구마모토 시에서 400년 이상 '조선(朝鮮)'이라는 이름의 엿을 만들어 온 '소노다야(園田屋)' 역시 현재 그 갈림길에 서 있다.


한국인이라면 '소노다야'보다 '조선이라는 이름의 엿'이 더 궁금할 테다. 정식 이름은 '조센아메(朝鮮飴)', 우리말로 옮기면 '조선엿'이다. '아메(飴)'는 '엿'을 뜻한다. 400여 년 전 소노다야에서 만들기 시작해 지금은 구마모토의 명물이 되었다.

무리한 점포 확장 피하고 '본래 맛' 고수
본점 한 곳서만 가내수공업 형태 생산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비상식량으로 각광
젤리처럼 부드러운 식감·소박한 단맛 매력

조센아메는 16세기 소노다야의 창업자 소노다 다케몬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의 이름은 '조센아메(長生飴)'였다. 소노다 다케몬은 당시 지역의 영주 가토 기요마사에게 이 조센아메를 바쳤다.

가토 기요마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측근으로, 임진왜란 때 대군사를 이끌고 조선으로 출병한 장본인. 당시 가토는 군사들에게 먹일 비상식량으로 이 조센아메를 가지고 바다를 건넜다. 시간이 지나도 상하지 않으며, 적은 양으로도 충분한 영양을 얻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맛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병사들에게 큰 인기였다. 그런 연유로 가토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센아메(長生飴)'를 음이 같은 '조센아메(朝鮮飴)'라 고쳐 부르기로 했다.

다른 설에 의하면 조선으로 출병한 가토 기요마사가 귀국할 때 우리나라의 엿 만드는 장인을 데리고 돌아가 만들었기에 '조센아메(朝鮮飴)'라 불리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군이 우리나라에서 군량미가 부족하자 임시방편으로 조선의 엿을 먹었는데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기자가 아는 한에서는 이보단 앞의 내용이 좀 더 설득력 있다.

400년 전통의 조센아메
일단 먹어보면 안다. 우리가 아는 엿이랑은 전혀 다르다. 조센아메는 엿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느낌으로는 떡에 가깝다. 부드럽다. 오히려 우리 떡보다 훨씬 부드럽다. 씹는 순간 젤리처럼 '쑤~욱'하고 엿 속으로 이가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달다. 아니 첫 맛부터 느껴지는 단맛이 아니라, 한 번 씹은 한참 후에나 '아! 달구나'라고 느낄 만큼 담백함 속에 단맛이 숨어있다. 사람의 성격에 비유하자면, 소박하다 하겠다. 맛이 참 소박하다.

조센아메의 재료는 크게 찹쌀과 물엿이다. 찹쌀을 물에 불려 맷돌로 잘게 부순다. 이후 가마에 설탕과 물엿을 함께 넣고 불을 지펴 졸인다. 적당히 졸아 눅진하고 차지고 끈적끈적해지면 나무틀에 넣고 4일 정도 건조해 완성한다.

메이지 시대였던 1877년 전국과자박람회에서 우승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져 구마모토의 명물이 되었다. '풍미감미(風味甘美)하고 제법노숙(製法老熟)의 묘(妙)가 있다.' 당시 조센아메에 대한 평가다. 굳이 쉽게 풀자면 '그 깊은 맛이 달면서도 고상하고,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묘한 매력이 있다' 정도 되겠다. 서투른 역(譯)이 오히려 그 평가의 글맛을 떨어뜨릴까 걱정이지만, 대충 그렇다.

그러나 만물의 이치는 오르고 내림이 있는 법. 조센아메 역시 1970년대를 기점으로 그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구마모토 시내에는 조센아메를 만들어 파는 가게가 30곳 이상 있었고, 총 매출액도 한 해 10억 엔에 달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는 매출액이 2억~3억 엔으로 떨어졌고, 가게도 원조인 소노다야를 비롯해 두세 곳만 남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형편은 다시 나아질 생각을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세상이 좋아지면서 다양한 먹을거리가 생겨난 때문이다. 어디 음식점뿐이랴. 많은 노포들이, 그 역사가 300년이 됐든, 400년이 됐든, 가장 힘든 시기는 현대에 들어와서부터일 테다. 그만큼 변화가 많아서다. 400년 전부터 300년 전까지의 100년 동안의 변화보다 지난 10년간의 변화가 더 많은, 그런 시대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이 쏟아져 나오고, 그만큼 빨리 옛것이 되어버린다.
종업원이 나무틀에서 건조된 조센아메를 잘라 상자에 담고 있다.
소노다야는 어떻게 이 힘든 시기를 견뎠을까? 현재 점포의 관리를 맡고 있는 다테 도오루(44) 영업부장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우선 '원조'라는 브랜드 파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나름대로 생각하는 또 하나는 호황기에 무리하게 규모를 키우지 않은 것이 오히려 불황기가 찾아왔을 때 견딜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점포도 본점 한 곳뿐이다. 최근 들어 전국의 백화점 '일본 전통 과자 코너'에 납품을 하긴 하지만 자본을 투여해 규모를 키우는 것과는 별개다. 점포 뒤편에 마련된 공장 역시 마찬가지. 지금도 여전히 옛 방법 그대로의 가내수공업 형태로 조센아메를 만든다.

400년이 넘도록 지독스러울 만치 본래의 맛을 지켜나가는 것을 고집했다. 포장지까지도 수십 년 동안 디자인을 바꾸지 않을 정도다. 빛 바랜 듯한 색깔이 고풍스럽다. 하긴 맛이 소박한데 포장지만 화려할 수도 없는 노릇이리라. 그런 고집이야말로 최근의 혹독한 30년을 견디게 한 원동력이었다. 타지에 시집을 간 여인이 수십 년이 지나 고향 집에 들러서도 어린 시절 먹었던 그 옛 맛을 찾아 가게에 방문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더 달라졌다. "현재 우리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나이가 대부분 60대 이상입니다. 이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어떻게 될지…." 다테 씨의 걱정이다. 더이상 그 옛 맛을 기억하는 세대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20대에게 이 소박한 맛으로 어필하기엔, 더 달콤하고, 더 세련된 먹을거리가 지천으로 널렸다.

조센아메의 맛을 좀 더 자극적으로 바꿔야 하나, 아니면 젊은 층에 맞춘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야 하나. 21세기 소노다야의 고민이다.

이런 와중에 소노다야에는 또 하나의 고민이 있다. 후계의 문제다. 현재 경영자는 18대 소노다 고이치(83) 씨. 나이가 나이인지라 점포에는 나오지 못한다. 현재 가게의 관리를 맡고 있는 다테 씨는 경영자 여동생의 아들이다.

경영자 소노다 씨에게도 아들이 한 명 있다. 그러나 현재 아들은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 만화 '건스미스캣츠'의 작가 소노다 겐이치(49) 씨가 바로 그다. '건스미스캣츠'는 한국에도 번역되어 나와 있는 꽤나 인기 있는 작품.

이 또한 21세기의 노포가 가지는 또 하나의 딜레마일 테다. 그 직계 자손이 당연히 가게를 이어받던 옛날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다테 씨가 가게를 이으면 되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 정작 다테 씨 본인은 말을 아끼며, 이렇게 답한다.

"누가 후계가 되든 이 가게의 전통이 10년 후, 100년 후까지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이대로는 그 바람이 이루어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전통은 지켜나가는 것뿐만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 50년 후 쯤 제가 가게를 되돌아 봤을 때 어쩌면 소노다야의 전통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역시, 본질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조센아메 1상자 660엔부터. 구마모토 현 구마모토 시 미나미쓰보이마치 6의 1. 096-352-0030. 일본 구마모토=글·사진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취재협조=규슈관광추진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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