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향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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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이후 대학생들이 정부의 반값 등록금·대학생 주거권 공약 후퇴와 파기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부산일보 DB

'병'이라는 개념이 한국사회에서 역사적 지형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검증하는 일상개념 총서를 내놓았던 돌베게 출판이 이번에 두 번째로 '청년'이라는 개념의 변천사를 다룬 '청년아 청년아 우리 청년아'를 내놓았다. 지은이는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상과 조건이 과거 어떤 과정을 거쳐 굳어져 왔는지를 추적해 온 사학자다.

그러고 보니 청년이라는 단어가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지은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선 후기 '소년' 혹은 '자제'라는 단어가 '장년' '노년'이나 '부로' '부형'과 상반되는 의미로 쓰였다. 장유유서라는 유교 사상에 뿌리를 두고 더 나이가 많은 사람의 가르침을 받아야 할 미성숙한 존재로 보았던 것이다.

'청년'이란 개념 도입과 변천사 추적
3·1운동 이후 문명선도집단으로 호평


개화사상이 싹트고 갑오개혁이 일어나면서 본격적으로 중국과 일본의 청년론이 유입된다. 일본 도쿄에 국비 유학을 떠난 학생들이 청년회를 만들었고, 1900년대 초에는 개혁과 근대화에 관심을 갖는 청년들이 기독교로 몰려들면서 한반도에서 교회 청년회가 퍼져 나간다. 을사늑약 이후로는 조국의 애국 계몽이 절실해 졌고, 급격한 개혁·부국강병론과 짝을 이룬 청년 개념이 퍼져 나간다. 

청년아 청년아 우리 청년아 / 이기훈
본격적으로 사회적 의미를 부여받은 청년 개념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인격을 갖춘 윤리적 주체로서 민족의 문명화를 선도하는 집단으로 호명된 청년은 3·1운동 이후 활발해진 사회운동과 결합하면서 역사상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운다.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이 사회적 주체로서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청년층을 앞에 내세웠다. 식민지 하에서 청년의 성장은 제국주의 일본에는 위협이 되었고, 총독부는 지역사회 네트워크 속에 중견으로 청년을 편입시키려 애썼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로는 국가의 부름에 헌신하는 청년상이 강조되었고, 해방 공간의 혼란 속에서 1960년까지 우익 청년조직은 권력의 폭력을 대행하고, 지역사회를 지배하는 실질적 권력으로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근대교육과 사회적 경험을 쌓은 세대가 성장하면서 '청년학도'가 민주주의의 수호자이자 저항의 주체로 새롭게 부상해 4월 혁명을 이끌었다.

권력의 동원 대상이 되는 청년과 권력 밖에서 자발적 주체로서 국가와 사회의 현실을 개선하려는 청년. 어쩌면 이것이 일제 이후 지금까지 한국사회 청년의 두 갈래 모습일지 모르겠다.

서북청년회 재건 모임과 폭식투쟁을 하며 거리로 나온 청년 일베 회원들, 그 맞은 편에 '안녕들하십니까'의 청년들이 있다. 미래는 어느 쪽에 있을까.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권력 밖의 청년은 여전히 미래를 향할 수 있다." 이기훈 지음/돌베게/332쪽/1만 8천 원.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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