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에 미친 사람들] '자갈치 칼 명품점' 홍순칠 씨 "38년째 '칼 갈아요'… 나는 칼 종합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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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흉기? 칼의 운명, 다스리는 손에 달렸다

홍순칠 씨에게 칼 수선을 맡기기 위해 일부러 멀리서도 손님이 찾아온단다.

자갈치 신동아시장 앞에 '자갈치 칼 명품점'이라고 써 붙인 소형트럭이 보였다. 트럭 뒤편 비닐로 바람만 막은 장소가 작업장이다. 흰 장갑에 꽃무늬 토시 차림. 38년째 '칼 갈이 인생'의 홍순칠(70) 씨이다. 장사가 안 될 줄 알았는데 뜻밖으로 단골이 많아 일은 많단다.

"횟집 등에서 식칼을 많이 맡기러 옵니다. 멀리 경주, 울산, 밀양에서도 손님이 찾아옵니다." 홍 씨는 방송에도 몇 번 출연했다. 방송을 보고 경기도 분당에서 칼 8자루를 들고 온 분이 가장 멀리서 왔다. 매일 오전 6시~오후 7시까지 일하고, 일요일에는 쉬는 생활을 수십 년째 반복하고 있다. 그동안 손수레 행상에서 트럭으로 바뀐 정도의 환경 변화만 있었다.

칼 하나 가는 데는 보통 4~5분 걸린다. 지나가던 한 할머니가 "여기에 칼 가는 곳이 있는 줄도 모르고, 칼이 안 든다고 내버렸네"라며 안타까워한다. 홍 씨는 "칼보다 오래 쓰는 연장은 없습니다. 영업집 칼은 빨리 닳지만 가정집에서는 20~30년은 써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을 칼을 고치는 종합병원장이라고 말했다. "병원은 죽어서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집에서는 못 고치는 병이 없어요." 그러니 손님들이 좋아하고 보람도 있다. 이 종합병원을 지나며 칼을 보면 겁이 난다는 사람도 있다. 그는 "사람이 겁납니다.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중에 위험하지 않은 게 어디 있습니까. 물, 가스, 전기, 불 등 다 위험물 속에서 살지 않습니까. 관리를 잘못하면 엄청난 재앙을 가져오지만 또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라고 말한다.

"어떤 분야든 최선을 다해서 안전을 기해야 하는데, 세월호부터 안전불감증이…"라며 말을 흐린다. 오래전에는이발 일을 했다. 자갈치 구경을 왔다가 칼을 파는 것을 보고 도구는 달라도 날 새우는 것은 비슷하다며 이 길로 접어들었단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라고 적힌 온도계가 봄날을 가리키고 있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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