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에 미친 사람들] '도(刀)'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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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신칼스토리 정재서 대표

'요리인간.' 인간은 요리하는 동물이다. 인간이 맨 먼저 성취한 위대한 발견은 불이었다. 그 다음 돌로 연장을 만들었고, 돌을 내리쳐 날카로운 날을 만들었다. 이것이 칼의 '원조'가 되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요리가 시작되었다. 칼의 옛말은 '갈'이다. 생선 '갈치[刀魚]'에서 그 흔적이 보인다. 어원적으로 칼은 동사 '갈다[磨 ·硏]'의 어간이 독립해 명사화한 것이라고 한다.

김훈의 '칼의 노래'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갓 잡은 고기는 살에서 경련이 일 듯이 싱싱했다. 칼이 한 번 멈칫거린 듯, 칼 지나간 자리가 씹혀 있었다. 잘려진 단면에서 힘살과 실핏줄이 난해한 무늬를 드러냈다. 붉은 살의 결들이 어디론지 흘러가고 있었다. 칼이 베고 지나간 목숨의 안쪽에 저러한 무늬가 살아 있었다.' 

치아처럼 아름답게 만들어 보급해야
전문가용 아니면 끝 뾰족할 필요 없어
칼을 보는 사람의 관점 바뀌었으면… 

10년을 가는, 절삭력 뛰어난 신제품
中 전자상거래 알리바바와 계약 눈앞
마지막 꿈은 영도에 칼 박물관 만들기


양 날의 칼! 칼에는 한 생명을 죽여서 새로운 창조를 한다는 양면성이 있다. 칼을 알아야 요리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칼을 만들고, 쓰고, 고치는 일을 각각 천직으로 삼은 이들을 만나 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칼의 노래'를 들었다.

■대한민국 '칼 명인 1호'정재서 씨

'장미천사칼'은 2012년부터 주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칼을 만든 칼 명인 1호인'영신칼스토리' 정재서(61) 대표의 인상은 뜻밖에도 부드러웠다. 칼의 날카로운 이미지를 줄이기 위해서 장미 그림을 그려 넣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주변에서는 그를 두고 "자다가도 일어나 칼 두 개로 스케이트를 탄다고 할 정도로 칼에 미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장미천사칼을 비롯해 '영신칼스토리'의 대표적인 칼을 한 자리에 모았다. 정재서 대표는 "사람의 치아처럼 아름다운 칼을 만들어서 보급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강원태 기자 wkang@
정 대표와 칼의 인연은 모질게 깊고도 길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열세 살 꼬마는 기성회비 낼 돈이 없자 집을 나와 거리를 방황했다. 그러다 들어간 곳이 칼 공장인 세신이었다. 그곳에서 칼에 대해 10년을 배웠다. 청년이 된 그는 이제 칼 쓰는 법이 궁금해 도축장에 찾아 들어간다. 거기서 꼬박 10년간 소머리를 자르며 힘들어했는데 어느 날 신명이 내렸다. 그때부터 무속인 칼을 만들기 시작해 외길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단다.

그는 "이제는 칼에 대한 집념이 생겨서 물러날 수 없다. 내가 살길은 첫째는 세계 최고의 칼 회사를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살아 숨 쉬는 칼을 만들기이다"라고 말한다. '칼 물고 뜀뛰기(몹시 위태로운 일을 모험적으로 행하는 경우)'라는 속담이 생각났다. 살아 숨 쉬는 칼에 대해 궁금해하는 기자에게 칼의 유래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정 대표는 "사람은 누구나 칼을 품고 태어난다. 돌이 지나면 앞니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윗니와 아랫니를 물면 자른다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칼이다. 칼도 사람의 치아처럼 아름답게 만들어서 보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칼의 본질인 '자르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과학·수학도 잘라야 발전한다"고 비유할 때는 칼자루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칼을 만들어 팔면서도 늘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칼끝을 뾰족하게 만들기가 싫어, 심지어 칼이라는 단어까지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유가 있었다.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예전에는 우발적인 살인이 많았다. 칼을 흉기로 사용한 살인사건이 나면 경찰은 물론이고 판검사까지 찾아와 서로 "몇 ㎜만 칼끝이 뭉툭했으면 이 사람을 살렸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단다. 한 과학수사대대장은  "칼끝이 뭉툭하면 한 해에 250명을 살릴 수 있다"는  논문까지 발표했다.

사실 칼날은 예리해야 하지만 칼끝이 뾰족할 이유는 별로 없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뭉툭한 칼은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칼을 보는 사람의 관점이 바뀌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전문 요리사용이 아니라면 칼끝이 뾰족할 이유가 없다. 칼에 대한 의식이 바뀌기 위해서 칼이라는 단어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인 김춘수는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라고 노래했다. 날카로운 칼에게 아름다운 이름를 붙여줄 이 누구 없을까?  

그가 먼저 리퍼트 미 대사 이야기를 꺼냈다. "총보다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칼에는 왜 안전장치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테러를 당했을 때 대책을 잘 세웠으면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호통을 쳤다.

멍청하게 있다가도 칼만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단다. 칼에서는 기가 흐르고 있고, 칼을 드는 순간에 뭐라도 잘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커터 칼도 위험하다. 못 쓰는 칼을 안전하게 버릴 장소도 마련해 줘야 한다"고 당부한다.

요리 쪽으로 이야기를 돌려보았다. 칼에 따라 정말로 음식 맛이 달라질까? "현미경으로 보면 칼은 톱날처럼 되어 있다. 칼날이 잘 안 들면 여기서 톱밥이 나온다. 그걸 우리가 먹는다고 생각해보라. 떨어진 톱밥 때문에 음식도 빨리 부패하게 된다." 일류 일식집과 허름한 횟집의 차이도 칼맛의 차이라고 했다.

날 선 질문을 하나 해보기로 했다. 우리나라에는 쌍둥이칼로 유명한 행켈이나 일본도 같은 명품이 왜 없나? 그는 "아직 명품은 못 만들었다. 하지만 만들 줄 몰라 못 만든 것은 아니다. 칼은 갈아서 다스려야 한다.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명품이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고 알 듯 말 듯한  이야기를 했다.

갈지 않고도 10년을 쓸 수 있는 신제품을 완성했다며 못 보던 칼을 들고 나왔다. 정 대표가 한 손에 종이를 들고 이 칼로 허공에서 종이를 갈랐다. 종이는 영화에서 대나무가 갈라지듯이 결대로 곧게 잘린다. 놀라운 절삭력에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나중에 집에 있는 칼로 따라해 보았더니 종이는 그저 뜯겨나간다. 이 신제품으로 중국의 인터넷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 등과 곧 계약할 예정이라니 흥미진진하다.

정 대표의 아들 민우 씨는 세계적인 요리학교 CIA를 올해 졸업할 예정이다. 아버지는 칼에서 최고, 아들은 요리에서 최고가 되기로 언약을 맺었다. 아들이 세계적인 셰프가 되어 아버지가 만든 칼을 빛내는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그의 마지막 꿈은 칼 박물관을 만드는 일이다. "영도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칼 박물관 1층에서는  칼을 만들고, 2층에서는 칼의 역사를 보여주겠다. 칼의 진화 과정을 아이들에게 보여줘 칼을 다루는 지혜를 전해주고 싶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com

사진=강원태 기자 w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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