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각 '제로맵'] 2. 거꾸로 가는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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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푸세식 화장실'이 있는 동네, 10집 중 한 곳은 빈집(덕포동)

부산 사상구 덕포동에는 '푸세식'으로 불리는 재래식 화장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각종 삶의 지표가 나빠져 'SOS 지수'가 가장 높은 곳이 덕포동인데 푸세식 화장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강원태 기자 wkang@

2010년 '김길태 마을'로 낙인찍힌 부산 사상구 덕포동. 김길태 사건 이후 낙후된 마을을 살리기 위해 많은 자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011년에서 2015년까지 4년 사이 덕포동은 SOS 지수가 가장 높아진 지역이다. 덕포1동과 2동은 각각 부산에서 2등과 1등을 나란히 차지했다.

사상구 덕포동의 긴박한 구조신호를 나타내는 상징은 바로 '푸세식 화장실'이다. 내부에는 변기도 없이 구멍만 덩그러니 있는 곳도 있다. 변기를 놓거나 수세식으로 변기를 바꿀 만도 하지만 이곳은 바꾸려는 시도도, 바뀔 가능성도 희박하다.

구조신호 최고 강해진 덕포동
재개발 11년째 지지부진
변화할 이유도 여력도 없어  

끔찍했던 '김길태 사건'에도
삶의 질 나아지기는커녕
낙후된 생활환경 악화일로

■변화할 이유가 없다

덕포동의 한 다세대주택에는 세 가구가 사용하는 푸세식 화장실이 3칸 있다. 이곳에 세입자들은 모두 식당, 시장 등에서 일을 하고 있다. 수입이 있는 만큼 사용하기 편리한 화장실로 바꿀 만도 하지만 이들은 신문지 1장 크기의 푸세식 화장실을 그대로 사용한다. 최 모(37·여) 씨는 "집주인은 재개발 구역이라 특별히 집을 수리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며 "그렇다고 세입자인 우리가 불편하다고 우리 돈을 들일 수는 없지 않나"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의 60% 정도는 세입자다.

이 지역은 2005년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수차례 사업이 무산됐다. 11년간 재개발이 진행되지도 재개발 구역 지정이 해제되지도 않은 탓에 주민들은 불편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실제로 푸세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장 모(56) 씨는 15년 전 고관절을 다쳐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데 쪼그려 앉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장 씨는 구멍을 뚫은 나무 의자를 푸세식 변기 위에 두고 앉아 용변을 본다.

다들 처지는 비슷하다. 이 화장실이 있는 골목에만 푸세식 화장실이 6곳이나 있다. 쪼그린 자세로 용변을 봐야 하는 완전 푸세식은 아니더라도 푸세식 화장실에 양변기를 설치해둔 곳도 많다. 슈퍼를 20년째 운영 중인 박 모(60·여) 씨는 "남들은 무릎이나 허리가 아프면 비가 오려나 한다는데 이 동네 사람들은 비가 오기 전 화장실에서 냄새가 올라와 비가 오는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변화할 여력도 없다

덕포1동은 기초생활수급자 비율, 차상위 계층 비율 등 빈곤 관련 지표가 부산에서 다섯 번째로 악화된 곳이다. 덕포2동은 세 번째다. 두 지역 모두 수입이 있더라도 이곳 주민들의 수입은 다들 '입에 풀칠만 할 상황'이라고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차량용 액세서리를 분리하는 일을 하는 박 모(46·여) 씨는 "10여 년 전부터 이 일을 했는데 그때 액세서리 하나를 칼로 분리하면 2원인데 아직까지도 2원"이라며 "그래도 우리는 이것이라도 할 수 있어 다른 집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없는 사람'만 남다 보니 공·폐가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개발 논의가 있고 진행되는 사업은 지지부지하다 보니 나갈 여력이 있는 사람은 집을 팔고 나가고 외지인들이 개발 차익을 노리고 투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대를 걷다보면 10곳에 1곳은 빈집이다. 특히 덕포1동에는 150평에 달하는 거대 저택도 비어 있다. 박 씨는 "김길태 사건 때도 공·폐가가 문제였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몸이 구해 달라 말한다

낙후된 환경과 가난은 몸으로 드러나고 있다. 덕포1동은 부산에서 건강 관련 지표가 가장 나빠진 지역이고, 덕포2동은 4번째로 나빠진 지역이다.

덕포1동의 고혈압환자 비율이 2011년 13.74%에서 2015년 16.16%, 당뇨환자비율 6.78%에서 8.95%로 증가했다. 덕포2동도 고혈압환자 비율이 13.77%에서 16.01%, 당뇨환자비율 6.48%에서 8.50%로 늘었다.

김 모(70·여) 씨는 "먹고사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운동하는 사람이 이 마을에 어디 있겠느냐"며 "그냥 모여서 커피나 마시고 수다나 떨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joyfu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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