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각 '제로맵'] 1. 넘보고 싶은, 넘을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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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하나 건너 '센텀'이라는데… "사는 게 더 팍팍해졌어요"(재송2동)

부산 해운대구 재송2동에 위치한 은지미용실에서 만난 주민들과 사회복지연대 박민성 사무처장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경현 기자 view@

부산 해운대구 재송2동 주민센터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몇 발짝만 걸으면 대여섯 평 남짓한 '은지미용실'이 있다. 인근이 언덕배기인지라 미용실 앞에 서면 재송1동은 물론 센텀시티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미용실을 오픈한 지 벌써 20여 년이 흘렀다고 하니, 재송1·2동의 분동에서부터 센텀시티 조성까지 이 일대 변화상을 쭉 지켜본 셈이다.

은지미용실의 주인 최금숙(53·여) 씨는 전남 나주 출신이다. 30년 전 남편과 함께 재송동에 이사 온 뒤 줄곧 이곳에서 살았다. 딸아이 이름을 따 미용실을 개업했고, 그 딸아이가 결혼한 지금까지 미용실을 운영 중이다. 세련된 손재주와 특유의 싹싹함 덕분에 수십 명의 단골 고객을 보유하고 있다.

재송1동 '더샵…'아파트 여파
집값 폭등에 월세까지 들썩
서민들 먹거리 줄여야 할 판

재송2동 '센텀' 포장 불구
재송1동과는 더 커진 격차
학군 등 상대적 박탈감 씁쓸


미용실 소파에 둘러앉은 단골 고객의 주요 관심사는 몇 년 새 부쩍 오른 집값이다. 대부분이 재송동 토박이인 단골손님들은 무슨 아파트가 평당 몇 백만 원씩 올랐는지 손바닥 꿰듯 훤히 알고 있었다. 집값 상승폭에 대해선 사소한 의견차가 있었지만, 상승 원인에 관해선 생각이 하나로 모였다. 수영역 뒤편 재송1동에 '더샵센텀스타'와 '더샵센텀파크' 등 초고층 아파트들이 잇달아 들어서면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재송2동도 동반 상승 효과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에게 집값 상승은 그다지 달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집값이 평당 몇 백만 원씩 오르면서 월세도 덩달아 몇 백만 원씩 올랐기 때문이다. 10년째 이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는 배금수(68·여) 씨는 "수십 년 된 빌라에 기초연금 받아서 근근이 사는 노인들이 한둘이 아닌데 월세가 올라버리니까 먹는 걸 줄이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하소연했다.

염색약을 바르고 있던 미용사 최 씨도 말을 보탰다. 최 씨는 "재송1동의 집값 상승률보다는 재송2동의 상승률이 아무래도 덜하다"며 "하지만 주변 물가가 오르는 건 매한가지라 서민들이 살기는 더 팍팍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재송1동에 더샵센텀스타와 더샵센텀파크 등 고층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재송2동의 모습도 그간 많이 변했다고 한다. 재송2동의 아파트와 빌라 이름에 '센텀'이라는 단어가 상용구처럼 따라 붙게 된 것도 그 중 하나다.

실제 재송2동의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센텀'이라는 단어가 삽입된 아파트와 빌라, 부동산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센텀○○빌라, 센텀△△△아파트 등 스무 곳은 족히 넘었다. 최근선 재송2동 부녀회장은 이 일대 건물 개명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재송1동의 아파트 분양이 '대박'을 친 직후인 2009~2010년 사이라고 했다. 최 부녀회장은 "한때 재송1동 일부 주민이 '센텀동' 신설을 요구한 적이 있을 정도로 센텀이라는 단어에 가치를 부여하는 이가 많다"며 "이 과정에서 재송2동 주민은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고, 동시에 상대적인 박탈감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재송2동에서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들은 보다 극명한 차이를 체감하고 있었다. 재송1동 아파트 단지 인근에는 한 달 수강료가 70만~100만 원 수준인 영어 유치원이 여러 군데 있다. 주민 김 모(40) 씨는 "6살 된 딸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데 벌써부터 '윗동네(재송2동)'와 '아랫동네(재송1동)'라는 표현을 써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부모들의 고민은 깊고 분명해졌다. 학부모들은 재송1동이나 센텀시티 일대 학군과 기존 재송2동 학군 간 차이가 시간이 갈수록 벌어진다고 느꼈다. 재송2동 주민센터 내 마을문고에서 만난 문송희(41) 씨는 "특목고나 센텀고를 가기 위해서는 재송2동에 있는 신재초등이나 반산초등보다는 재송1동에 있는 송수초등이나 센텀초등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며 "여러 이웃이 아이 초등학교 문제 때문에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사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재송2동 마을문고 회장 노현정(47) 씨는 "아이를 센텀고에 보내 놓고도 혹여 비교당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어머니들을 많이 봤다"며 "아이가 눈치를 볼까봐 아예 거리가 먼 동래학군의 고등학교 진학을 원하는 학부모도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jyoung@busan.com





복지사각 '제로맵'이란?

부산지역 206개 동(洞)의 각종 삶의 지표를 분석·종합해 'SOS 지수'란 이름을 붙여 만든 지도다. 기획을 통해 드러난 삶의 여건이 나빠진 동네에 행정적 지원을 집중, 복지 사각지대를 '제로(0)'로 만들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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